▲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슈리성 왕궁 내부를, 게다가 오로지 계단으로 된 2층 공간을 휠체어를 타고 다닐 수 있으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김대홍
문화유산인 만큼 모든 사람은 신발을 벗고 나무를 깐 실내를 걸었다. 여자친구만은 예외. 휠체어를 탄 채로 돌았다. 통로가 넓지는 않았으나 휠체어가 움직일 정도는 됐다. 움직일 때 휠체어에 먼저 우선권을 줬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양보했다. 잘 훈련된 '양보'였다. 눈치를 주거나 볼 필요가 없었다. "실례"라는 말조차 사족이었다.
1층은 잘 구경했으나 마침내 장애물이 나타났다. 2층으로 올라가야 했으나 옛 건물인 만큼 모든 이동로는 계단이었다. 우리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고, 지금껏 안내했던 직원은 사라졌다.
'하, 결국 1층만 구경하는 거였구나. 그래도 이게 어디야. 궁궐 실내를 같이 구경한 것도 평생 처음인데.'알고 보니 장소마다 몸이 불편한 사람을 안내하기 위한 직원이 배치돼 있었다. 1층부터 2층까지 올라가는 간이승강기를 조종하기 위해 할아버지 직원이 나타났다. 1층과 2층 사이 중간 계단에서 다시 2층으로 올라갈 때는 에스컬레이트형 휠체어를 이용했다. 2층에서는 따로 준비된 휠체어를 탔다. 모든 과정이 워낙 매끄럽게 이어져 기다릴 필요조차 없었다.
2층에서 밖으로 나올 때는 깔판형 경사로 승강기를 이용했다. 한 사람이 이 모든 과정을 처리했다면 무척 서둘러야 했겠지만 구역마다 한 사람씩 전담자가 있어 누구도 서두르지 않았다. 담당자가 서두르지 않으면 이용자 또한 마음이 느긋해진다.
우리는 휠체어를 타지 않은 사람들과 똑같이 구경했다. 그들이 본 것은 우리도 보았고, 우리가 못 본 것은 그들도 보지 못했다. 처음엔 걱정이 가득했던 여자친구도 어느새 기분이 좋아졌는지 의기양양한 태도로 바뀌었다.
"걱정했는데 별것 아니네. 내년에는 오키나와 리그 할 때 맞춰서 와요. 아예 작정하고 경기장만 돌지 뭐."우리는 오키나와에 5일을 머물렀고, 경기가 열리기 직전 그곳을 떠났다.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나섰지만, 운전대도 왼쪽, 차선도 왼쪽, 신호도 거꾸로인 곳에서 차를 몰아봤고, 2층 궁전을 휠체어로 돌아봤다. 하나씩 벽을 깨는 게 여행이라면 우리는 또 한 차례 짜릿한 여행을 했다.
자, 다음은 어떤 여행이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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