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속사회> 책 표지
창비
학교 밖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위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나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긴지 끊임없이 물어보곤 했다.
문화학자인 엄기호의 <단속사회>에서는 나만의 개인적 일화가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펼쳐진 양상임을 들려주었다. 내게 국한된 얘기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이야기라는 점에 위로 아닌 위로가 되었고 책의 서두부터 말미까지 연신 머리를 끄덕거리며 공감하며 읽었다. 그래서 또 다른 스타일의 힐링 서적 같았다. 하지만 우리 사회와 개인이 어떻게 무너져 가고 있는지 섬세한 관찰자 시점으로 낱낱이 잔인하게 보여주는 책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은 너무 좋지만 너무 싫은 책이다.
그는 제일 먼저 한국 사회를 단속 사회라고 정의했다. 그는 혹시나 내가 속한 집단에서 찍혀 피해를 볼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타인의 행동에 관심을 갖거나 혹은 타인이 내 일에 개입하는 것을 '끊임없이 차단'하는 동시에, 나와 같은 취향을 갖는 사람들이 속한 집단 혹은 SNS에 끊임없이 접속해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한국 사회를 '단속 사회'라고 정의하였다. 그의 말을 인용하자면 '편을 강조하고, 곁을 밀치는 사회' 라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가 속한 사회 안에서 끊임없이 자기 의견을 묵인하고 억압하게 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책에서 가족, 사회, 국가가 어떻게 단속이 되는지 예시를 통해 들려준다.
그는 편을 강조하는 사회로 인해 나와 다른 사람의 만남을 차단하게 되면서, 서로의 경험의 지혜의 전승이 불가능하게 되고 책임은 개인 스스로가 감당하게 된 현실이라고 말한다. 그는 또한 타인의 일에는 최대한 관여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부담주지 않는 선에서 관계가 유지된다고 진단했다.
학교라는 작은 공간에서도 배제할 순 없다. 옛날처럼 술 한잔 사주며, '야~ 대학교 다닐 땐 말이야'라며 지혜를 들려주는 선배가 없다. 2004년 학부 입학시절을 떠올려보면, 선배들이 술자리에서 나를 붙잡고 끊임없이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노력했다. 다소 명령조로 들려주는 선배의 이야기가 기분은 나빴지만, 자신의 실패담을 들려주며 '너는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해주었다.
이제는 지혜를 구하고자 대화를 시작해도, '잘 될 거야'라는 간단한 위로의 말 외엔 들을 수 없는 공간. 이제는 재수 없었던 선배의 말이 듣고 싶어도 듣지 못한다. 많은 기성 세대 분들이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책이 출판되었을 때, 왜 저런 내용이 책으로 나와야 했는지 의아해 했다. 하지만 예전처럼 선배들이 술을 사주며 지혜를 들려주는 화자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힐링'을 소비해야만 한다. 만약에 혹여 좋은 조언을 해준답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면 되려, 오지랖 넓은 선배로 찍히게 된다. 결국은 경험적 지혜를 돈으로 사야 할 지경으로 변모했으리라.
게다가 경쟁이 내부화된 현실에서는 더욱더 곁을 두기 어렵게 되었다. 취업하기 힘들어 학교 내에서의 경쟁은 더욱더 치열해졌다. 더 좋은 학점을 따기 위해, 더 높은 질의 논문을 쓰기 위해서 우리는 바로 옆에 있는 학우들과 끊임없이 차단했고, 서로를 이겨야 살아 남을 수 있는 전쟁터가 되어버렸다. 이제 대학교 안에서 서로 선을 긋게 되었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적어져 나는 경쟁에 뒤쳐지게 되니까. 그래서 우리는 가벼운 가십거리나 나누는 '술친구' 이상은 아닌 존재가 되어 버렸다.
'곁'에게 말을 걸 준비가 되어 있나요?혼자 살아 남아야 하는 사회, 경험과 위안은 돈으로 사야 하는 사회.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단속해야 하는 사회. 저자는 이러한 현실이 지속되면 개인 혹은 사회가 성장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서로 겪고 있는 이야기를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겪고 있는 일로 공적 이슈로 전환할 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를 자신만이 아닌 모두의 이야기, 아니면 적어도 사회적 관심을 가질 만한 소재로 만들어내는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 내 이야기에 누군가 다른 이가 맞장구를 치며, 자신도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게 하는 것을 통해 사적인 근심과 걱정은 나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의 문제가 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공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p186).이 책을 마무리 하며, 곁을 지켜보는 일이 사라진 시대에 다시 곁을 만들어 보기 위해 나 먼저 손을 내밀어 보려고 한다. '타인과 부딪힘을 피하기 위해 애쓰는 친구'들에게 내가 먼저 다가가고 싶지만, 일방적인 혼자만의 액션은 되려 스트레스가 돼서 돌아올까봐 두렵기도 하다. 혹여, '내일이니 상관 마'라고 벽을 칠까봐 두렵기도 하다. 학업 스트레스가 심해 힘들다고 SNS으로 한탄하는 친구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보기로 했다. 혼자가 아니라고. 우리 함께 의지해서 함께 완성해 나가자고 곁에게 이야기를 걸기로 했다.
단속사회 - 쉴 새 없이 접속하고 끊임없이 차단한다
엄기호 지음,
창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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