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엔 적어도 종편이 지금처럼 프로그램도 엉망이고 콘텐츠 투자도 하지 않고 재방송 비율도 높고 보수 일변도에 양로원층에 집중적으로 프로파간다하는 낮은 수준으로 타락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어요."
권우성
"수미일관이네. 취임할 때 종편 때문에 퇴장하고 퇴임 앞두고도..." 지난 19일 방송통신위원회(아래 방통위)가 종합편성채널(아래 종편)을 재승인하는 순간 '야당'은 없었다. 김충식 부위원장과 양문석 상임위원 모두 '불량 방송'을 인정할 수 없다며 회의 도중 퇴장한 것이다. 공교롭게 3년 전 2기 상임위원 취임 직후 종편 승인에 맞서 퇴장했을 때와 똑같은 상황이었다.
두 차례 퇴장 부른 종편과의 악연 "80점은 기대했는데...""3년 주기로 종편 재심사를 하게 돼 있어 이렇게 되리란 예감은 했어요." 마지막 회의를 마친 다음날(20일) 집무실에서 만난 김 부위원장은 지난 3년을 되돌아보며 만감이 교차하는 듯 했다.
"주어진 짐과 가지고 있던 꿈, 행사할 수 있는 힘. 짐과 꿈, 힘 사이에서 3년 동안 고심하고 성찰하고 투쟁해 오면서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야 3대 2 구도에서 '퇴장'은 소수파에겐 마지막 카드다. 김 부위원장은 전날 '범죄적인 행위'라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써가며 무리하게 종편 4개를 만든 방통위를 강하게 비판했다.
"3년 전엔 적어도 종편이 지금처럼 프로그램도 엉망이고 콘텐츠 투자도 하지 않고 재방송 비율도 높고 보수 일변도의 낮은 수준으로 타락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어요. 최소한 지상파 80점 수준은 되리라 기대했는데 지금은 50점도 안 되는 시청률과 재정 형편, 국민 서비스에, 방송으로서 품격까지 대부분 무너뜨렸어요." 과천정부청사 한 동을 차지한 방통위 청사에는 '섬'이 두 곳 있다. 바로 두 야당 추천 상임위원 집무실이다. 엄연히 합의제 중앙행정기관 차관급 자리지만, 야당에서 보냈다는 이유로 눈에 보이지 않는 유리벽에 갇혀 보내야 했다. 심지어 방통위 사무국은 종편 재승인 심사 결과를 회의 10분 전에야 상임위원에게 통보하고 채점표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그렇게(야당 추천 위원이라) 추측해요. 잘못된 거죠. (종편) 사업계획서를 보여줄 때도 (비밀유지 각서에) 서명해 달라고 해요. 그런 식으로 내부를 불신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거고 적절한 사무국 태도는 아니죠." 소수파 차관, 설득과 투쟁도 안되면 구걸해야 하는 자리'야당 차관'이 겪는 어려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방통위는 합의제 기구지만 여야 3대 2 구도여서, 다수결로 하면 늘 야당쪽이 밀릴 수밖에 없다.
"3년 내내 쟁점에 부딪힐 때마다 소수파로서 괴로움을 많이 느꼈어요. 때론 투지를 불러일으킬 때도 있었지만. 3대 2 구도에선 영원히 다수결에 질 수밖에 없지만 두 사람 분 안에 담을 국민의 뜻이 있고 공정방송 지향하는 많은 성원이 담겨 있어 투쟁도 해야 하고 한편으로 설득하고 구걸에 가까운 행동도 해야 할 때가 있었어요."김 부위원장은 지난해 3월 김재철 MBC 사장 해임 당시를 떠올렸다. 사장 해임 권한을 갖고 있는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진은 정부여당쪽 6명, 야당쪽 3명으로 갈려 야당만으로 해임안 처리가 불가능했다. 결국, 네 차례 시도 끝에 여당쪽 이사 2명이 극적으로 돌아서면서 5대 4로 해임안이 통과됐다. 김 부위원장은 당시 숨은 공신 가운데 하나였다.
"당시 여당 이사 두 사람을 밤낮 가리지 않고 짧게는 20여 일, 길게 보면 6개월 이상 설득했어요. 설득과 조정을 넘어서 당위성을 설명하다 지쳐서 애걸하고 구걸했어요. 보수와 진보를 떠나서 언론 역사가 한걸음이라도 가려면 많은 언론 보도와 경찰 수사, 감사원 고발 등으로 상처투성이가 된 사람을 사장으로 계속 두는 것은 언론과 방송 산업, MBC 장래를 위해서 더는 안 되지 않겠나, 거의 구걸에 가까운 설득을 했죠."이런 숨은 노력에도 MBC 파업 등 굵직한 현안을 놓고 언론운동진영과 소통이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때 유임까지 거론되던 김 부위원장에겐 가장 뼈아픈 대목이다. 하지만 김 부위원장은 자신과 격의 없이 지낸 언론시민단체 인사들 이름을 하나하나 거론하며 '소통'이 부족했다는 평가를 일축했다. 오히려 현재 언론 운동 방식에 적극적인 변화를 주문했다.
"MBC 파업이 길어질 때 노조에서 세 사람이 찾아와 방통위원 사퇴를 요청했어요. 직에 연연해서가 아니고 언론 운동을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인지 걱정이 됐어요. 사퇴하려면 나도 이유와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파업 힘겨루기 일환으로 사퇴 선언을 해달라는 데 복잡한 생각이 들었어요. 언론 운동이 현장의 변화를 꿰뚫어보지 못하고 구시대 운동 방식이 답습되며 점점 힘은 시민사회에서 보수정권으로 넘어간다는 의구심이 있어요. 과거 독재 정권에 항거하던 시절 투쟁 방식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 아쉬워요. 어떤 형태로든 바뀌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