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사건' 피고인 유우성 씨 "나는 간첩이 아니다"간첩혐의 피의자로 검찰 조사를 받았던 '탈북자 서울시공무원 간첩사건' 피고인 유우성씨가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참고인으로 검찰조사를 받기에 앞서 자신의 입장을 밝힌 뒤 답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날 유 씨는 "나는 간첩이 아닌 다른 사람과 똑같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며 "1년 넘게 너무 억울하고 힘든 시간이었다. 하루 빨리 건강이 안 좋은 아버지와 동생과 함께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유성호
이뿐 아니다. '밀입북한 오빠가 북한 보위부에 붙잡힌 뒤 조사를 받고 간첩으로 포섭된 시기'에 대한 유가려씨의 진술이 너무 자꾸, 크게 바뀐 점이 확인된다. 보위부 포섭 시기는 이번 사건에서 핵심 내용 중 하나다.
유가려씨는 2012년 11월 21일 진술서에서 이 시기를 '2008년 1월 말'이라고 했다. 그런데 6일 뒤인 11월 27일 진술서에서는 '2007년 8월 중순'으로 바뀌었다. 한겨울에서 한여름으로 5개월 앞당겨진 것이다. 이후 약 보름 뒤인 12월 15일자 진술서에서는 다시 '2006년 5월 28일 경'으로 1년 3개월이나 앞당겨졌다. 이젠 봄이다.
보위부 포섭 시기가 두차례나 연도를 넘나들어 바뀌는 것도 이상하지만, 유우성씨의 행적과 비교해보면 점점 알리바이 입증이 쉽지 않은 방향으로 이동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2008년 1월 말'은 유씨가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난 때다. '2007년 8월 중순'은 유씨가 북경사범대 교환학생으로 연수를 하기 위해 북경에 가 있었을 때다. 모두 상대적으로 알리바이 입증이 수월하다. 하지만 마지막 시기로 선택된 '2006년 5월 28일 경'은 좀 다르다. 이때 유우성씨는 수두를 앓아 베이징과 장춘 등지에서 치료를 받았다고 주장했지만, 바깥 활동이 적었던 때라 다른 두 시기에 비해 알리바이 입증이 쉽지 않다.
유가려 "수사관이 '이때 이때가 밀입북 가능성 높다'고 했다"자신의 친오빠가 간첩이라는 내용의 유가려씨의 증언은 이런 식으로 '진화'했다. 공소사실과 부합하는 마지막 매끄러운 진술서를 넘어서, 그 과정에서 나온 26건의 유가려씨 진술을 면밀히 살펴보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내용과 뒤죽박죽 진술이 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왜 그랬을까?
유가려씨는 1심 재판과정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대머리 수사관(그는 자신을 조사했던 국정원 수사관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법정에서 이렇게 불렀다.)이 흰 종이에 2007, 2008, 2012를 써놓고 '이때 이때 이때 오빠가 북한에 들어갔다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또 "우리(국정원)가 유도하는 대로 진술하지 않으면 오빠도 교화(징역) 간다고 계속 주입했다, 자신들이 원하는 대답이 안 나오면 마지막까지 진술을 받으려 했다"고 증언했다.
1심 재판부는 유가려씨의 진술이 객관적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다며 유우성씨의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지만, 유가려씨에 대한 국정원의 강압이나 가혹행위 가능성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우성씨와 변호인들은 여전히 수사관들의 강압수사 때문에 허위자백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12일 기자회견에서도 유우성씨는 "동생이 합신센터에서 수사를 받는 동안 '회령 화교 유가려'라고 쓴 종이를 앞뒤에 붙이고 다른 탈북자들 앞에 세워서 공개 망신을 줬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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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뿐 아니라 "오빠는 간첩" 진술도 짜맞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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