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운동장 터에서 발굴된 하도감과 염초청 유구.DDP가 건설된 동대문운동장 터에서는 성곽 123m와 이간수문, 조선시대 군사시설인 하도감돠 염초청의 유구 3000여점이 발굴됐다. 이곳에서 발굴된 유구들은 본래 위치에서 보존되지 못하고 성곽 밖으로 옮겨졌다.
전상봉
동대문운동장에 '디자인 산업의 메카'를 짓기 위한 오세훈 시장의 구상은 2006년 8월 '동대문운동장 공원화 및 대체 야구장 건립 추진계획'으로 구체화됐다. 추진계획의 발표와 함께 서울시는 '천만상상 오아시스'를 통해 동대문운동장 부지에 대한 시민 아이디어 공모도 병행했다.
월드디자인플라자(DDP의 초기 이름)로 명명된 '디자인 산업의 메카'를 짓기 위해 서울시는 2007년 2월부터 9월까지 동대문운동장 일대의 타당성 조사를 실시했다. 그런데 타당성 조사가 채 마감되기도 전인 2007년 4월을 설계안을 공모하면서 졸속추진의 첫 단추를 끼웠다. 이와 함께 서울시는 디자인 행정을 총괄하는 기구인 '디자인서울총괄본부'를 시장 직속 기구로 설치(2007년 5월)한다.
서울시가 공모한 DDP 현상설계에는 승효상, 최문규, 조성룡 등 국내 건축가 4명과 자하 하디드, 스티븐 홀 등 해외 건축가 4명이 초청됐다. 현상설계 심사를 위해 서울시가 위촉한 심사위원은 7명이었다. 7명의 심사위원 가운데 과반수인 4명이 외국인이었고, 나머지 3명이 내국인이었다.
다분히 외국 건축가의 설계안이 우대받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성이었다. 여기에 더해 서울시는 국내 건축가들에게 DDP 설계안 설명을 영어로 진행하라고 통보한다. 이 같은 통보는 국내 건축가들이 한낱 들러리에 지나지 않음을 강하게 암시했다.
예상대로 DDP 현상설계작은 외국 건축가의 몫이었다. 2007년 8월 서울시는 DDP의 설계안으로 이라크계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작품 '환유의 풍경'을 선정했다. 이때부터 동대문운동장이 지닌 역사성과 장소성이 파괴될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동대문운동장이 지닌 의미를 알지 못하는 자하 하디드가 그곳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살려낼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이 같은 우려를 호도하기 위해 '세계적인 건축가', '건축의 여제',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한 최초의 여성 건축가' 따위의 수사를 동원했다. 마치 삼성 자본이 라파엘 비뇰리라는 미국 건축가를 동원해 종로2가 화신백화점을 부수고 종로타워를 건설할 때처럼!
밑 빠진 독, 세금 먹는 공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