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공 앞 식당에 점심 손님이 뚝 끊긴 이유

청소 해고노동자들 시위하자 외출 자제 요구... 수공 "사실 아니다"

등록 2014.03.17 11:35수정 2014.03.17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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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water 본사 주변 상인들이 작성한 탄원서.
K-water 본사 주변 상인들이 작성한 탄원서. 심규상

"갑자기 식당마다 한 달 매출이 평균 200∼400만 원씩 줄었습니다."

K-water(한국수자원공사, 대전광역시 신탄진로) 본사 주변 식당주들은 요즘 하루를 한숨으로 시작한다. 수공 직원들이 몇 달째 점심시간마다 발길을 뚝 끊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구정을 앞둔 어느 날. A씨는 여느 때처럼 아침부터 식당에 나와 점심 식단을 준비했다. 30여 곳에 이르는 수공 주변 식당들의 주요 손님은 당연히 직원들이다. 약 1000여 명의 직원 중 평균 500여 명이 인근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한다.

하지만 이날 점심시간이 다 지나도록 식당을 찾는 사람들이 없었다. 수공 직원들은 이날 약속이나 한 듯 아무도 오지 않았다. 가끔 수공에서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직원들이 나오지 않는 때가 있어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직원들이 점심을 먹으러 나오지 않았다. A씨 식당뿐 아니라 주변 모든 식당에도 직원들이 찾지 않았다.

식당주인들은 이후에 수공 측 직원들로부터 정문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는 해고된 청소 노동자들이 점심시간마다 집회를 해 이를 불편하게 생각하거나 충돌을 우려해 나오지 않는 것이라고 전해 들었다.

수공의 시설관리와 청소 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10명(노조원 9명)은 새용역회사(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두레비즈)로 바뀌면서 새해 첫날 집단 해고됐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지난 1월 6일부터 '고용승계'와 '원직 복직'을 요구하며 수공 정문 오른쪽에서  53일째(14일 현재) 길거리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매일 민주노총대전지역본부와 함께 오전 11시 30분부터 점심시간을 이용해 집회를 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자 주로 점심장사를 하는 주변 식당들의 매출이 뚝 떨어졌다. 주변의 한 식당주는 "식당마다 월 평균 200∼400만 원씩 매출이 줄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가다간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덧붙였다.


참다못한 주변 상인들은 최근 잇달아 회의를 갖고 탄원서를 작성했다. 이들이 탄원서를 제출하는 곳은 수공이 아닌 관할 경찰서와 시교육청 등 관련 기관이다.

 K-water
K-water심규상

수자원공사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이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수자원공사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이 눈덮인 길바닥에 깔개를 깔고 앉아 원직복직 쟁취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수자원공사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이 단식농성에 돌입했다.수자원공사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이 눈덮인 길바닥에 깔개를 깔고 앉아 원직복직 쟁취 단식농성에 돌입했다.김병준

이들은 탄원서를 통해 "점심때만 되면 확성기를 틀고 집회를 해 주변 식당을 이용하는 직원들이 나오지 못해 식당 업주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빠른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부탁한다"고 강조했다. 관계기관에 해고 노동자들의 집회를 막아달라는 요청이다.


한 식당주는 "농성을 하는 노동자를 만나 사정을 해봤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다"며 "관계기관이 나서 주민 불편과 학생들이 안전을 위협하는 농성을 하지 못하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농성 중인 노동자들은 "사측이 주변 식당주들과 노동자들 간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 해고 노동자는 "수공 직원들에게 의존해 장사를 하고 있는 업주들의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책임은 사측에 있다"며 "결국 사측이 해고 노동자들과 주민들 간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고 노동자들은 "수공 측이  해고 노동자들의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오마이뉴스> 취재 과정에서 사측의 권고가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수공의 한 직원은 "구정 직전 사내 방송을 통해 민주노총이 정문 앞에서 시위중이니 점심시간 등에 출입을 자제하라는 권고 방송이 있었다"고 말했다. 수공 관련 일로 수공을 자주 오가는 한 협력업체 직원은 "구정 직전 수공 직원으로부터 내부통신망을 통해 정문 앞 농성을 이유로 점심시간 외출을 자제하라는 권고문이 올라갔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증언은 직원들이 갑자기 점심시간 외출을 하지 않은 때와 일치한다. 직원들은 농성을 시작한 지난 1월 6일 이후에도 자유롭게 점심시간을 이용 외출을 하다 구정을 앞둔 어느 날부터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 점심시간 외출을 하는 일부 직원들도 정문과는 거리가 먼 우측 쪽문을 이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 수공 관계자는 "외출 자제를 권고한 사실이 전혀 없다"며 "사실 무근"라고  일축했다. 이 관계자는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해고된 청소노동자들이 정문 앞에서 '생존투쟁'을 하며 대치하고 있는데 직원들이 편하게 왔다 갔다 할 수 있겠냐"며 "마음이 불편해 자진해서 외출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지역민들은 "수공 본사가 있지만 주변에 주는 혜택이 전혀 없다"며 "이전 투쟁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K-WATER #한국수자원공사 #비정규직 #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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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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