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 9. 9. 조선총독부 광장에서 미 점령군이 도열한 가운데 일장기가 내려가고 있다.
NARA, 눈빛출판사
이 소식에 대부분 한국인은 일순간 멍해졌다. 해방은 도둑같이 뜻밖에 왔다는 이도, 아닌 밤중에 찰시루떡 받는 격으로 해방을 맞이하였다는 이도 있었다.
일본의 항복을 미리 알았던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엔도(遠藤)는 조선에 있는 일본인의 신변보호 및 그들의 안전 귀국을 위해, 여운형을 만나 행정권을 넘기기로 하였다. 여운형은 이를 수락하고 이미 비밀리에 조직했던 건국동맹을 모체로 건국준비위원회를 발족시켜 이튿날 정치범을 석방하고, 치안대를 조직하는 등, 발 빠른 활동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곧 조선총독부는 38선 이남에 미군이 점령한다는 정보를 듣고는 일방으로 건국준비위원회에 행정권 이양을 거둬들인 뒤, 미군정이 실시될 때까지 모든 권한을 회수해 갔다. 그들에게 조선의 독립은 안중에도 없었다. 이는 우리 겨레에게 이름만의 '껍데기 해방'으로 앞날이 무척 험난함을 예고했다. 그 험남한 여정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