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도시사람맹키로 배낭메고 산에 와서 밥먹응께 영 재밌네이
김영희
"겨울에 회관에서 놀지만 말고 요렇게 산에 댕기먼 좋겄네.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그래 그래. 그렇게 해." "그럼 다음에는 언제 갈꺼여."산에서 내려오면서 동네사람들은 기분이 좋아 모두 한마디씩 했다. 두계 산악회가 생겨난 내력이다.
두 번째 산행은 1월 15일, 나는 동네에 없어서 빠지고도 무려 열 두 명이 갔다고 했다. 연심이네, 석재네, 물가상집. 덕례네, 재수네, 봉덕이네, 또랑갓집, 재수네 아저씨, 봉덕이네 아저씨, 또랑갓집 아저씨, 우리 집 아저씨. 종현씨.
그날은 안골로 해서 가동봉으로 올라 비득재를 거처 가시덩굴을 뚫고 큰 느랏터로 내려왔다는데 하루 종일 걸어 모두들 다리가 아파서 혼났다고 야단이었다. 무슨 산악회가 두 번째 부터 그렇게 고강도 산행을 했는지 알 수 없다. 종현씨 빼고는 모두 60대 70대 촌 양반들이.
세 번째 산행은 2월 9일. 전번 산행이 너무 고돼서 다 안 나올 줄 알았는데 뜻밖에 또 열 두 명이 되었다. 연심이네, 석재네, 재수네, 봉덕이네, 또랑갓집, 물가상집, 봉덕이네 아저씨. 또랑갓집 아저씨. 우리 집 아저씨, 두가헌 아저씨, 마을사무장, 그리고 나. 우리 집 뒤 요꼴로 올라가서 나는 순천에서 오는 중학교 학부모들 맞느라 중간에서 내려오고 나머지는 모두 능선을 타고 가다가 느랏터로 내려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