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무지 개간 당시 삽을 든 농민들. “잃어버린 땅을 안에서 찾자”
김민지
엘스씨의 친절한 안내를 받아 기념관을 30여 분간 돌아보니 달가스 아저씨한테 좀 미안해졌다. 초등학교 교과서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우리가 배웠던 달가스는 너무 단순했다. 애국심, 투지, 근면이 그때 배운 키워드였다. 그러나 달가스는 그 이상이었다. '더불어 함께'였고, 과학이었다. 무엇이 달가스의 국토개간운동을 성공시켰나? 그 성공요인들은 오늘날의 덴마크가 '행복지수 세계 1위'의 나라가 된 것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나?
첫째, 어떤 일을 성공시키려면 타이밍이 중요하다. 엘스씨는 "적기에 적절한 사람이 일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달가스는 황무지 개간을 시도한 첫 번째 사람이 아니었다. 이미 덴마크 정부가 그보다 50년 전에 시도를 했었다. 그러나 농부들이 따르지 않아서 실패했다. 또 100년 전에는 독일인들이 1000명이나 몰려와 시도를 했다. 그러나 사나운 날씨와 기술부족 등으로 포기하고 돌아갔다.
달가스가 시작한 1866년에는 덴마크에 철도가 개통됐다. 농민들이 그룬트비 정신으로 만들어진 농민고등학교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1864년 독일에 패전해 국토의 3분의1을 빼앗긴 상태에서 2년이 지난 시기였기에 국민들은 절망의 바닥을 찍고 뭔가를 해야 된다고 느끼고 있던 때였다. 그때 가장 적절한 사람이 등장했다. 달가스는 공병장교였기에 땅을 알고 땅을 다스릴 줄 알았다. 추진력이 있었다.
둘째, 위에서 아래로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기운을 모아 '더불어 함께' 해야 성공한다. 달가스는 농부들의 마음을 사가며 그들과 함께 일을 추진해나갔다. 그룬트비 정신으로 무장한 농민고등학교 출신들과 마음을 합친 것도 주효했다. 기념관에는 달가스를 처음부터 지원해준 5명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그룬트비 정신으로 만들어진 학교의 교장 루드빅 쇼더(Ludvig Schoder)이다. 이 교장은 학생들에게 "달가스와 함께 하자"고 권유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에 '함께 힘을 보태면 이득이 생긴다'는 것을 체험한 협동조합원 농부들이 늘어난 것도 도움이 됐다.
희망·근면 만으로는 부족, 지식·과학 있어야 한다셋째, 참여자에게 실질적인 이득을 줘야 성공한다. 농부들이 황무지 개간에 열심히 동참한 배경에는 애국심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나에게 확실한 이득이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개간이 끝나면 참여한 농민들은 일정한 땅을 소유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4만5000명의 '내 땅을 가진 농부'가 새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당시 덴마크에서는 달가스 드림(Dalgas Dream)이라는 말이 생겼다. 아메리칸 드림에 견준 말이다.
덴마크 농민들은 황무지 개간운동을 전후로 약 30만 명이 미국으로 이민갔다. 미국에서 서부개척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덴마크에서 먹고 살기 힘든 이들이 이민을 간 것이다. 그러나 달가스 드림은 그 흐름을 일부 바꿔놓았다. 미국에 가지 않고도 여기에서 내 땅을 차지하고 잘 살 수 있다! 이렇게 참여자에게 실질적인 이득을 준 점은, 앞 글에서 소개한 덴마크 최초 낙농 협동조합의 성공 요인과 맥을 같이한다.
넷째, 희망만으로는 안 된다. 의지와 근면만으로도 안 된다. 지식과 과학이 있어야 한다. 달가스 기념관을 둘러보면 마치 과학실험기구 전시실에 온 듯하다. 황무지 개간운동사는 어찌보면 흙, 물, 나무에 대한 연구사였다.
그 과정에서 표면의 흙들은 죽은 것이지만 40cm이상 파면 살아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저습지에서 물을 빼내야 땅을 개간할 수 있었기 때문에 물에 대한 과학적 연구도 필요했다. 개간된 토양에서 살 수 있는 나무를 연구하는 것도 매우 중요했다. 오랜 시행착오 끝에 흙, 물, 나무에 대한 3대 연구가 궤도에 올랐을 때 개간운동은 날개를 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