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총선에서 유영하 새누리당 후보를 지원유세했던 박근혜 대통령.
유영하 블로그
이 분들을 폄하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여성 1호들의 시대 개척 정신과 공로에도, 그것이 대다수 여성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묻고 싶다. 여성가족부는 어떤 마음으로 이 행사를 기획하였을까? 이날은 대통령 취임 1주년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우리는 지금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통치하는 나라에 살고 있다. 최고 통치권자로 여성이 선출되었으니 우리 사회에 더 이상 '유리천장'이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길 조금은 바랐다. 하지만 최초의 여성대통령은 그 이름에 걸맞은 통치를 하지 않았다.
유리천장을 깨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천장까지 올라갈 사다리가 걷어차여진 상황이다. 보이지 않는 천장보다 눈앞에 놓인 벽이 더 큰 문제다. 게다가 바닥에 서 있는 사람에겐 바닥의 균열이 제일 무섭다. 아래로 떨어지지 않길 바라며 산다.
생활고를 비관한 세 모녀가 동반 자살했다. '집세와 공과금'과 함께 남긴 그들의 마지막 말은 "죄송합니다"였다. 우리 사회는 어디까지 잔인할 것인가. 얼마나 더 비인간적이 될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이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면 여성들의 삶과 무관한 여성대통령이 될 것이다.
'영웅 1호'보다 민주주의가 중요우리는 지금까지 여성문제에 있어서 여론이 집중되면 반짝 대책을 쏟아내다 관심이 사그라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제자리로 돌아가는 경험을 많이 했다. 근본적 문제와 무관한 임시방편으로 대응하거나 그럴듯한 포장으로 눈가림을 하기도 한다.
여성 의제가 지속적, 전문적, 종합적으로 정책에 반영되지 않는 것은 여성이 정치적으로 대표되고 있지 않다는 증거다. 누군가가 배제되고 있다면 그것은 민주주의라 할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웅 1호'가 아니라 여성의 시민권이 온전하게 보장될 수 있는 정치적 구조다. 결국 민주주의에 관한 문제다.
얼마 전 국회 입법조사처에서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 제고를 위한 과제(김영일, 이정진, 조주은)>라는 의미 있는 보고서가 나왔다. (
관련 기사 보기)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은 해외선진국과 비교할 때 낮은 수준"이라고 한다.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여성 정치인의 비율이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51%지만, 여성 정치인은 전체 국회의원의 15.7%, 광역자치단체장 0%, 기초자치단체장 2.6%, 광역의회 의원 14.8%, 기초의회 의원 21.6%에 불과하다.
국회의원 중 여성 비율은 16대까지 5% 내외였다가 17대에 13%대로 갑자기 뛰어올랐다.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와 비례제 여성 할당 50%가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비례대표제는 정당의 득표율에 비례해 당선자 수를 결정하므로 국민의 의사가 그대로 의석에 반영된다. 일반적으로 비례대표제가 다수대표제에 비해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이 높다고 한다. 비례제를 택하고 있는 대표적 국가인 스웨덴의 경우 여성의원 비율이 44.7% 이른다. 여성의원 비율이 높은 상위 20개 국가 가운데 13개국이 비례제를, 6개국이 비례제와 다수제가 혼합된 선거제도를 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혼합제를 택하고 있다. 19대 국회는 전체 국회의원 중 여성 의원이 15.7%인데 비례대표의 경우 54명 중 28명, 52%가 여성 의원이다. 지방의원은 비례대표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월등히 높아 광역의회는 71%, 기초의회는 91%가 여성의원이다. 다만, 전체 의석 가운데 비례대표가 차지하는 비중이 국회의원은 18%(300명 중 54명), 광역의원은 13%(2030명 중 266명), 기초의원은 13.5%(6735명 중 912명)에 불과하다. 비례의석 증가는 여성의 정치적 진출을 보장하는 검증된 경로다.
보고서는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을 확대하기 위한 방법으로 비례대표 확대를 통한 여성의원 비율 증대와 함께 여성할당 규정의 법·제도적 실효성 확보, 여성명부제와 같은 다양한 방식의 여성할당제도의 도입, 헌법 개정을 통한 남녀 대표성의 평등조항 명기를 제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