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 하승현 사적비
김종신
'대한의사 하승현 사적비'라 적힌 비는 순 한글로 적혀 세로 읽기가 불편해도 차근차근 읽었다.
"1919. 4. 2일 함양 장날 병곡면 사람 김한익(金漢益)이 주도한 함양읍 만세 사건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여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가 긴급 출동한 헌병들에게 김한익이 붙잡혀 가게 되자 하승현이 군중들을 데리고 노도와 같이 뒤를 따라 헌병분견소를 포위하고 석방을 요구하였다 분함을 찾지 못한 하승현이 군중 대열에서 뛰어 나와 석방을 요구하며 달려들자 일본 헌병은 총격을 가하여 현장에서 장렬하게 순국하였다.
이 소식을 듣고 달려온 하승현의 아버지 하재연과 숙부 하재익이 헌병에게 달려들자 총격을 가하여 역시 순국하였다. 병곡면민은 하승현 선생의 순절을 기리는 뜻에서 1953년 면장의 발의와 군수의 동의로 기념비를 상림 위쪽 뇌계천 도로변에 세웠고 군내의 뜻있는 분들이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를 구성 솔숲에 사적지를 만들었으며 1967년에는 상림에 의거 기념비를 군에서 건립하였고 대통령 표창을 추서 받았다"고 적혀 있다.
비단 함양에만 이렇게 많은 의사와 열사를 비롯한 애국지사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눈을 들어 찾지 않고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상림공원 내 숲 한가운데에 세워진 돌덩이로만 보고 그동안 지나쳤다. 차가운 돌덩이에 새겨진 그 날의 함성과 의사들의 열정을 알자 뜨거운 심장처럼 느껴졌다.
멀찍이 사람의 출입을 막아서서는 이 기념비 세운 뜻을 이어갈 수 없다. 나무 식생을 위해 사람의 출입을 막아야겠지만 기념비 근처까지는 사람이 와서 읽을 수 있도록 해주었으면 한다.
뜨거운 기념비를 뒤로하고 다시 숲 속을 걸었다. 약수터를 지나 넓은 숲 한가운데로 난 길.역사인물공원이 나타났다. 고운 최치원 선생을 비롯해 함양을 빛낸 위인 흉상이 상림공원 내 공원인 역사인물공원에 있다. 이중 의재 문태서 선생 흉상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새겨진 글을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