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라 연대하라> 겉표지
삼인
염 추기경의 발언으로 그간 가졌던, 변두리(?)에서 기꺼이 사람들에게 위로와 구원을 하던 가톨릭의 모습에 금이 갔다. 하지만 책 한 권으로 인해 다시 희망을 봤다. 성직자의 참모습을 그려주는 책을 만났다. 강우일 주교의 <기억하라 연대하라>가 그렇다.
책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 장은 강우일 주교의 강연을 문자로 옮겼다. 두 번째 장은 인권연대의 오창익 사무국장이 강 주교에 대한 글을 썼다. 마지막 장은 강 주교의 글들이 있다.
그의 해박함에 놀랐다. 참 많은 주제를 다루지만 성직자의 역할을 분명하게 강조했다. 해군시지, 구제역 사태, 4대강 사업, 신자유주의와 FTA, 북한과 평화, NLL에서 시작된 '땅'에 대한 그의 생각들.
국가의 이름으로 행동하는 사람들, 국가의 안보를 걱정하면서 일한다는 사람들이 행하는 일들, 그들이 말하는 국가의 정책이 국민들의 동의나 공감대 속에서 집행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만을, 그러니까 지배층의 소수 권력자들만을 위한 것인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들만의 편향된 사고와 이념, 자기들만의 기득권을 위해서 국가의 이름을 내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도 국가가 하는 일이라고 해서 우리 모두가 훼손할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로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 소박한 생각이 아닐까요. (27쪽)
강우일 주교 "4대강 사업은 도둑질... 땅은 우상이다"강 주교는 천주교 제주교구장으로 7만 명이 넘는 신자들의 사목 책임자다. 게다가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을 맡고 있다. 한국 천주교의 얼굴인 셈이다. 이력도 특이하다. 김수환 추기경의 보좌 생활을 오래했다. 꼬박 21년 동안 곁을 지켰다. 긴 세월 동안 오로지 김 추기경을 묵묵히 보좌하는 역할에 충실했다. 공개적으로 발언하기를 극도로 아꼈다.
그랬던 그가 이제 듣는 사람이 불편한 이야기, 귀에 거슬릴 만한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마치 선종한 김 추기경의 빈자리를 메우려는 듯. 세상에 따끔한 회초리를 들었다. 그동안의 침묵이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였던 것처럼. 가시밭길 걷기를 자처했다.
벌써 70세. 현장에서 한 발짝 물러나 원로 대접을 받으며 고상한 말 몇 마디나 하면서 사는 게 어울리는 나이다. 게다가 경력과 지위만 보면 적당한 독선(?) 정도는 생기는 게 자연스러울 정도다. 그러나 그는 늘 새로운 주제,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자고 환기한다.
강 주교는 제주교구장으로 있으면서 4·3사건 진실규명과 해군기지 건설 반대 등 지역적 현안에 목소리를 높였다. 정의를 위해서라면 그의 시선은 국경도 넘었다. 평화가 깨지고 인권이 유린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강 주교는 티베트 사람들이 "군대와 경찰에 포위되어 세계로부터 고립된 채 겪는 좌절과 고독에 눈을 감고 무관심해서는 안 될 것"이라면서, "외로운 이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갖고 기도하며 어떤 형태로도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 예수의 뜻이고, "이런 오늘의 현실과 연결되지 않은 부활 신앙은 공허"하다고 했다. (106쪽)강우일 주교는 귀를 열어 들으려 했고, 눈을 들어 보려 했다. 그러자 세상 도처의 아픈 소리들이 들려왔고, 눈앞에 아른거렸다. 차마 이를 외면할 수 없었다. 종교인의 양심이 그를 움직였다. 성직자의 정치참여는 개인의 주관에 의한 게 아니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과실이라 했다.
이명박 정권이 무모하게 파헤친 강들이 그랬다. 정권은 4대강 살리기라고 했고, 또 4대강 정비 사업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강우일 주교는 십계명 중 일곱 번째 계명인 "도둑질하지 말라"라는 말씀을 빌려, 4대강 사업을 '도둑질'이라 규정하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109쪽)그렇다고 자신이 갖은 종교의 가르침을 벗어나지 않았다. 철저하게 성경과 예수의 가르침을 따랐다. 강 주교에게 계명은 단순히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자연을 해치는 행위도 그에겐 '도둑질'이었다.
불평등이 심화되면 그 사회는 균형을 잃고, 생존에 위협을 느끼는 이들이 폭력과 약탈을 감행하고, 붕괴가 시작된다. 사회가 붕괴되면 아무리 부를 많이 축적한 사람도 공멸할 뿐이다. 이제 백성들도 지도자들도 땅에 대한 잘못된 환상과 집착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땅은 우상이다. (195쪽)한 없이 낮은 곳으로 향했던 종교인들이 사회의 어른으로 추앙받으며 많은 이들을 위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공동체에 대한 종교인의 의무는 무엇인가. 강우일 주교는 지난달 19일 <한겨레>와의 인터뷰 도중에 이렇게 말했다.
"교회나 성직자는 사회문제에 대해 침묵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 사회의 문제가 불거질 때 앞장서서 이를 지적하고 바로잡는 것, 이를 위해 어떠한 정치적·사회적 활동도 망설이지 말라는 것이 역대 교황의 일관된 가르침이었습니다."강우일 주교 덕분에 다시 희망을 봤다. 기억하고 연대하자.
기억하라, 연대하라 - 강우일 주교에게 듣는다
강우일 지음,
삼인,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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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수정 추기경의 발언 '충격', 그러나 희망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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