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할머니들도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손자 돌보던 친구, 자기 일 찾더니 얼굴이 환해졌다

등록 2014.03.02 15:50수정 2014.03.03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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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얼굴 표정하고 헤어스타일이 많이 변했다. 너 요즘 좋은 일이 많이 있나본데. 얼굴에 화색이 돈다. 분명 무슨 일 있지?"
"그렇게나 표가나?"


"나고말고 네가 보낸 카카오톡에서도 글씨가 아주 날아다니던데?"
"그 정도야? 나 사실은 두 달 전부터 마트에서 일해."
"어쩐지 분위기가 완전 달라졌다 했지."

10개월 동안 친손자를 보던 친구 A가 달라졌다. 달라져도 너무 달라진 것이다. 손자 돌보기를 그만두고 새 일을 찾은 친구의 얼굴이 환해졌다.

지난주 친구모임에 나온 친구 A의 화사한 모습은 모두의 관심을 받았다. 손자를 돌볼 때에는 전체적으로 기운이 없어보였다. 세수도 제대로 못하고, 머리는 부스스, 화장은 입술정도만 바르고 나왔고 바지에 티셔츠가 전부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달랐다. 원피스에 롱부츠, 옅은 화장에 머리도 커트생머리로 바꾸었다. 요즘 트랜드를 한눈에 보는 것 같았다. 한결 생기발랄해지고 젊어보였다. "마트 어디에서 일하는데?" "어떻게 거길 들어가게 되었는데?" "네 남편은 하라고 해?" 등등 우리의 질문공세는 계속되었다.

그중에 친구들이 가장 궁금해 했던 건 "한 달에 얼마나 받는데? 첫 월급타서 뭐했니?"였다. 손자는 며느리가 휴직계를 내면서 그만 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손자가 가고 나니깐 갑자기 할 일이 없어졌다고 했다. 그렇다고 손자를 다시 봐주기는 싫고 앞으로도 다시는 못 봐줄 것 같다고 했다. 그 마음 나도 충분히 알고도 남는다.


친구는 마트 식품코너에서 일하고 일이 아주 재미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누군가의 문자메시지를 보여준다. 하도 열심히 일을 하니깐 점주가 "여사님 다른 곳에 새일 잡지 마세요, 제가 충분히 생각해드릴게요..."라는 문자였다.

"네 남편은 나가라고 해?"
"물어보나마나 못 나가게 하지. 내가 밥을 굶길까봐 그러냐하면서. 그래서 내가 마트가 바로 집 앞이고 나도 무언가 할 일이 필요하다고 했지. 그리곤 무조건 나갔어. 내가 나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살며시 내가 일하는데 와보더라고."
"그래 잘했다."


한 달 내내 하는 것이 아니고 며칠 일하고 며칠 쉬고 하니깐 할 만하다고 했다. 내 나이에 일자리가 어디 있겠냐면서 열심히 할 거라고 했다. 그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B가 입을 뗐다.

"부럽다. 난 지금 빼도 박도 못한다. 아마 난 손자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진 봐줘야할 것 같아."

B는 남편과 함께 손자를 봐주고 있다. 다행히 손자는 작년부터 친구의 집에서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한결 수월해졌다고 한다. 일단 자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서... B도 손자를 안 봐주려고 몇 번이나 노력했지만, 결국에는 친구가 두 손 두 발 다 들고 5년 동안 봐주고 있다.

하여 난 그에게 "오랫동안 손자를 봐줘서 손자가 가고나면 많이 서운할 거야, 그러니깐 손자 없는 시간에 무언가 배워서 준비를 하고 있어"라고 했다. 하여 그는 두 달 전부터 <동화 읽어주기>를 공부하고 있다.

손자를 봐주는 친구, 그렇지 않은 친구

친구들은 두 부류로 나뉘어졌다. 손자를 봐주는 친구, 손자를 처음부터 아예 안 봐주는 친구. 손자들을 안 봐주던 친구들은 우리들이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면 의아해 한다. 그러면서 "그러게 나처럼 처음부터 딸이든 며느리이든 직장을 그만두라고 하고, 너희들 아이는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고 그러면 됐지"라고 말한다.

나도 손자를 봐주다가 두 달 만에 손을 들었지만 처음에는 그러지 않았다. 딸아이한테 "아이를 봐 줄 테니 안심하고 얼마든지 직장을 다녀라"고 했었다. 그런 이유는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면 주부들도 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또 오랫동안 전업주부로 살다가 자신이 하던 일을 되찾기란 힘들다는 것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늦은 나이에 손자를 도맡아 키우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사랑스러운 거 따로 힘든 거 따로"란 말도 있지 않은가. 손자를 끝까지 못 봐준다고 선언한 것에 대해서는 후회한 적은 없다. 다만 딸과 손자들한테 미안한 마음은 가지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딸아이가 자신의 일을 빨리 되찾아 지금까지 직장에 잘 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딸아이에게 사정이 생겨 손자들에게 내 손이 필요할 때에는 지금도 열일을 제쳐놓고 달려갈 것이다. 나도 딸아이에게 손자를 못 봐준다고 하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 그것이 바로 글쓰기 공부였다. 글쓰기 공부를 16주 한 다음 지금까지 꾸준히 글을 쓰면서 얼마간의 원고료를 받고 있다.

60대인 할머니들도 무언가 새로운 일을 하고 싶다

내가 노력해서 번 돈은 액수에 상관없이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기쁨과 보람을 준다. 그 돈으로 손자들과 가족들에게 가끔 선물도 사주고, 얼마 안 되는 적은 액수이지만 적금도 들었다. 돈을 벌고 싶은 이유 중에 가장 큰 한 가지는 지금보다  더 늙어도 자식들한테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다. 친구 A도 저금도 할 거라며 웃었다. 60대에 그런 기분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 모를 것이다.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분 좋은 자신감이다.

A의 얘기를 들으면서 다른 친구들도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듯했다.

"그러게 앞으로는 100세 시대라는데 지금처럼 살면 정말 지루할 거야! 솔직히 말해서 쟤 현순이는 시민기자 활동을 아직 하고 있는데 이렇게 오래할 줄 정말 몰랐다. 우리끼리 그랬다. 젊은 사람들 틈에서 얼마나 버틸까? 길어야 1년 아니 6개월? 아마 그것도 길거다. 했었거든. 그런데 우리들의 예상은 아주 빗나갔어. 그러니 우리들도 생각을 좀 바꿔보자."

친구들의 말이 맞다. 나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시민기자 생활을 할지 몰랐다. 내가 시민기자로 활동한 지도 어느새 12년째가 된다. 가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힘들어질 때면 '손자들까지 못 본다고 하면서 시작한 일인데 여기에서 포기할 수는 없지' 하며 스스로 채찍질을 한다.

"얘들아 오늘 밥값은 내가 낼게, 나 며칠 전에 월급 받았거든..."
"야호! 신난다."

친구들은 박수를 치면서 아주 좋아한다. 그는 첫 월급을 타서 남편에게 용돈을 주려고 했지만, 끝까지 받지 않아 둘이 오붓하게 저녁을 먹었다고 한다. 친구 A의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다. 정말 보기 좋다. 친구 덕에 나도 덩달아 힘이 났다. 아직 그렇게 손자 그만 돌보고 자신의 일을 찾은 친구는 그가 처음이다.

친구가 하늘을 쳐다보며 "내가 언제 이런 세상에 살았었나 싶다" 하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친구의 새 출발을 큰 박수로 환영한다.

친구도 나도 손자들을 무척 사랑한다. 그리고 우리들 자신의 삶도 많이 사랑하고 있다.
#새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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