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문살티공소 앞 바윗돌에 붉은 색으로 새겨진 안내문에는 이곳이 그 시대 살아남은 자들의 피난처임을 말해주고 있다.
안미향
살티공소 앞 바윗돌에 새겨진 안내문 글씨의 붉은 색이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안내문은 이곳이 처참한 죽음의 절벽에서 실낱같은 생명줄을 잡고 연명해야 했던 그 시대 소외자들의 피난처였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당혹스러웠다. 신해박해, 신유박해, 기해박해, 병인박해 등 천주교 박해는 교과서에서만 보았을 뿐 한 번도 죽음에 직면했던 그들의 고통을 느껴본 적이 없다. 당시로서는 생소한 믿음을 가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혹독한 고문 속에 내던져져 죽어 갔다는 사실에 새삼 몸서리가 쳐진다.
안내문에 따르면 이곳 '살틔공소'는 1866년 병인박해를 헤치고 살아남은 자들이 옮겨온 피난처로 형성됐다. 1866년 당시 '살틔공소' 주위는 인가와 멀리 떨어져 있고 삼림이 울창해 맹수들이 들끓었다고 한다. 실제로 안내문에는 김문옥 신부 부친이 호랑이에 잡혀 먹혔다는 얘기를 적어놓았다. 사람들 대신 맹수들 곁으로 피난 왔으니 당시 예수교라는 생소한 믿음이 기득권에 피해를 줄 것이라고 판단한 이들이 맹수보다 더 무섭고 포악했음을 알 수 있다.
석남사까지 교인들을 잡으러 왔던 관원들도 이곳을 알아채지 못하고 경주로 넘어가곤 해서 이곳이 교인들의 죽음을 면하게 해준 '살터' 혹은 '살틔'로 불리게 됐다고 안내문은 적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