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학습을 법으로 금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주장] '교육은 백년지대계'...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마련되길

등록 2014.02.25 10:00수정 2014.02.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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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에서 선행학습 선전만 못하는 거지 수업은 진행된다면 예전과 별반 달라지는 게 없을 것 같은데요? 대부분 아이들이 학원에 가서 공부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데."


지난 20일 국회를 통과한 선행학습 금지법 소식에 큰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언론에선 올 2학기부터 초·중·고교에서 선행학습이 전면 금지된다고 줄줄이 보도했지만, 큰아이는 그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둘째 아이의 반응은 좀 달랐다.

"그건 진작부터 그랬어야 해요. 특히 중학교, 고등학교 때 배치고사 같은 시험은 대부분 선행학습에서 나오기 때문에 나는 정말 어려워서 답을 골라 썼거든요. 또 고등학교 때는 배치고사로 반편성을 하는데 특별반에 들기 위해 정말 대비를 많이 하는 아이들도 있어요. 일반적으로 특별반에 들어가야 소위 좋은 대학교에 갈 수 있다는 말에 기를 쓰고 하는 것 같아요. 사실 그 반 아이들은 또 그렇게 되고. 그런데 학교에서 선행학습 금지법을 지켜 나간다면 어느 정도는 효과를 볼 것 같아요."

작은아이의 눈이 반짝였지만, 이 말을 들은 큰 아이의 반응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그건 특별반 아이들이 원래 기본적인 실력을 갖추고 있고, 선행학습도 되어 있으니 자연스럽게 좋은 결과가 나온 거야. 그리고 지금과 같은 입시 위주, 서열 위주의 교육 환경에 놓인 특별반에선 어느 정도의 선행학습을 하고 있는데, 그것도 못하게 하면 학교도 반가워하지 않을 것 같아. 게다가 학원에서 광고만 하지 않을 뿐 선행학습 위주의 수업을 계속 한다면 별반 달라지는 게 없을 거야. 오히려 학교에서 안 하는 선행학습을 학원에서 할 수 있다는 걸 더 내세울지도 몰라. 그러면 학부모나 학생들이 더 학원으로 몰릴 수도 있고."

"학원에서 선행학습 할 수 있단 걸 더 내세울지도"


두 아이를 키우면서 느낀 것이 좀 있다. 먼저 선행학습을 통해 학습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갖춰야 할 것들이 있다. 먼저 학년에 맞는 기본 학습을 제대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취하는 선행학습은 아무 소용이 없을 뿐만 아리나 오히려 기본 학습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다음으로 선행학습의 범위는 다음 학기에 배울 정도의 부분이어야 한다. 그래서 예습 정도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언제부터인가 선행학습이 마치 모든 학생들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어버렸다. 그 주원인을 제공하는 곳이 바로 학원이다. 학원에서는 공부를 잘 하는 것,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는 것이 마치 선행학습 덕분인 것처럼 선전을 하고 있고 또 그렇게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좀 더 깊게 들여다 보면 학원에서도 성적 상위권 학생들로 구성된 반 위주로 선행학습을 하고 있는데, 그 학생들은 기본 학습이 제대로 갖춰져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선행학습의 효과를 볼 수 있다. 그것은 선행학습의 효과라기보단 기본실력 때문이다. 그런데도 학원이 선행학습이 전부인 것처럼 선전하기 때문에 대다수 학생들도 무조건 선행학습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교사들 중에는 '학생들이 선행학습을 했겠지'란 생각을 전재로 수업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경향이 선행학습을 부추기기도 한다.

"선생님께 모른다고 물어보면 다른 애들은 다 아는데 너만 모르냐고 하세요. 수업할 때도 잘 알아듣는 아이들을 위주로 하는데 그 아이들은 모두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한 아이들이거든요. 그러니 나머지 아이들도 당연히 그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으로 가는 거예요."

아이들로부터 이런 말을 듣게 된다면 어느 부모라도 학원으로 보내게 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선행학습으로 빚어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원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책임의식을 갖고 노력해야 한다.

선행학습을 하는 이유,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나는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과외선생님으로서, 무리한 선행학습보다는 자기 학년에 맞는 공부를 우선으로 해왔다. 어려서부터 공부에 대한 욕심도 많고 성적도 늘 상위권에 있던 큰아이의 경우에도 선행학습보다는 기본교육에 더 치중했다. 학교수업을 우선으로 수업시간에는 선생님과 눈을 맞추고 할 수 있도록 했고, 집에 와서 하는 공부도 숙제를 우선으로 했다.

나와 같이 공부할 때도 선행학습보다는 학년에 맞는 문제집을 위주로 했고 시간이 남으면 난이도 있는 문제집을 풀었다. 그러다보니 가끔은 두 시간 동안 서너 문제로 씨름을 할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도 아이에게 답을 알려주기보다는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렇게 해서 문제가 풀리면 아이의 성취감도 컸고 자신감도 갖게 되었다.

큰아이가 중학교에 다닐 때, 주변 학원으로부터 수업료 면제를 해줄테니 아이를 보내줄 것을 제안받기도 했다. 한 번은 큰아이가 주변의 친구들은 모두 학원에 다니고 있어 불안했는지 학원에 다니고 싶어 했다. 특히 시험 때가 되면 친구들은 학교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학원에 갔다가 밤 12시가 넘어서야 집에 오는 생활을 하는데 자기는 집에서 혼자 공부하다보니 영 불안했던 것이다.

그때도 나는 아이에게 학원에서의 선행학습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로 위안을 해주었고 오히려 혼자 하는 공부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리고 시험결과 큰아이의 성적이 학원에 다니는 친구들보다 월등했던 덕에 더 이상의 불안함을 갖지 않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는 아이의 단짝 친구 엄마가 과학탐구과목의 1년 과정을 겨울방학 2달 동안 선행학습 하는 학원에 보내자고 했다. 물론 나는 거절했지만 우리 아이만 뒤처지는 게 아닐까 은근히 걱정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막상 시험성적을 보니 선행학습을 했던 그 아이에 비해 큰아이의 성적이 월등해 다시 한 번 무리한 선행학습의 소용없음을 실감했었다.

과외선생님으로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우선으로 하는 것은 수업시간의 중요성과 학교 숙제였다. 그래서 숙제조차 잘 해내지 못하는 아이에게는 교과서를 위주로 가르쳤고 그 다음이 문제집이었다. 방학 때가 되면 다음 학기의 문제집을 푸는데, 그것도 문제집의 반 정도만 푸는 게 전부였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렇게 문제집을 풀었는데도, 막상 새 학기에 들어서 다른 문제집을 풀거나 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면 모르는 부분이 많다.

선행학습은 그저 다음 학기의 공부를 조금 맛보는 것일 뿐,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기를 바라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다만 조금 맛본 다음 학기의 공부를 수업시간에 선생님으로부터 다시 배우고, 배운 부분을 다시 공부하면서 이해하는 데 조금의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번에 통과된 '선행학습 금지법'을 바라보며, 공부하는 데 예습 정도의 의미인 선행학습을 법으로 금지해야 할 정도가 됐다는 사실 때문에, 그리고 그 법이 시행되어도 별반 달라질 것이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한편으로는 당장의 눈앞에 보이는 문제 해결에 급급해서 가지치기 식의 방안을 만들기보다는, 보다 멀리 내다보고 근본적인 해결에 가까워질 수 있는 방안들이 마련되길 바라는 마음도 갖게 되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말을 실감하며.
#선행학습금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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