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등을 촬영한 헝디엔 촬영장의 진황궁 모습저지앙 헝디엔에는 동양의 할리우드를 표방해 다양한 시대를 만들어놓았다
조창완
중국전문가 강효백씨는 <협객의 나라>라는 저술을 통해 중국 역사를 관류하고 있는 협의 정신을 분석한다. 그는 "은혜를 입고 은혜에 보답하는 것, 자기를 알아준 사람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것, 이것이 협객의 이데올로기이자 중국 사회를 관통하는 최고의 행동원리다"고 말한다.
진시황을 죽이려다 실패한 자객의 비조(鼻祖) 형가(荊軻)를 비롯해 사무친 원한과 배신, 복수가 횡행하던 춘추전국시대에서 격동의 근대까지. 호방한 기상과 대붕 같은 지혜로 한 시대를 헤쳐 나갔던 수많은 영웅협객들의 피가 중국인들에게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장예모는 그런 협을 그리고 싶어했다. 그가 진시황을 다룬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내가 가장 관심 있었던 것은 진시황을 어떻게 그리는가였다. 이는 자신이 직접 겪었던 문화대혁명의 실질적인 주도인물인 마오쩌둥을 어떻게 다룰 건가와 비슷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마오쩌둥은 사생활이 복잡하고, 인민을 굶주리게 하는 한편, 장예모 자신도 직접 겪었던 지식인들의 환란인 문혁을 추인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예모는 진시황을 용서함으로써 마오쩌둥을 용서하는 한편 그를 영웅으로 만들었다.
장예모는 당시 기자가 된 도올 김용옥과의 인터뷰에서 스스로 "내가 추구한 테마는 오직 협(俠)이라는 전통관념의 긍정적 맥락일 뿐이었다"라고 말했다. 이어진 질문에 "그것은 대의를 위하여 개인의 사리사욕을 버릴 줄 아는 사신취의(捨身取義)의 정신이다. 무협소설의 대가 김용(金庸)선생도 협지대자(俠之大者)는 위국위민(爲國爲民)이라고 말했다. 협이란 삶의 큰 목표가 있는 사람이다. 그 목표란 선천하지우이우(先天下之憂而憂, 천하의 근심을 먼저 근심하고)하고, 후천하지락이락(後天下之樂而樂, 천하의 기쁨은 나중에 기뻐한다)하는 동방인의 보편관념이다(범중엄의 등악양루기 중 문구). 이러한 보편관념이 <영웅>에서는 천하(天下)라는 두 글자로 표현된 것이다"고 말했다.
장예모는 그 스스로 진시황의 천하통일, 즉 제국주의의 정당화를 생각해본 적은 없다고 하지만 영화를 통해 진시황에 대한 합리화는 물론이고, 자신의 세대에게 진시황이었던 마오쩌둥을 이해한다고 한 셈이다. 하지만 이미 장예모가 세우려는 협은 '중화주의'에 상당히 몰입된 협이다. 그 협에는 사실상 의(義)가 결여되어 있다. 그래서 더욱 무섭기도 했다. 실제로 장이모의 이후 걸음은 예상한 대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