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분 좋은 웃음으로 모두 손을 흔들며 역사적인 마을 상징 찾기 주민 큰마당이 시작되었다. 백지 토론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전진호
주장이 아니라 대화가 시작되다처음엔 그랬다. 여자삼춘들은 머뭇머뭇 말을 꺼내지 못하고, 남자삼춘 한두 사람이 의견을 주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곧 봇물은 터졌다. 원탁마다 섞여 앉은 청년들이 "삼춘, 어릴 때 뭐하고 놀아수꽈?" "제일로 자랑할 만한 게 뭐 마씸?" 제안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자 대화가 시작됐고, 대화 안에 마을의 소중한 장소들이, 마을의 오랜 먹을거리가, 마을의 귀한 동식물이, 켜켜이 쌓인 마을의 역사가 살아나왔다. 원탁마다 피어올라 체육관을 가득 채운 이야기 소리, 한두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저마다 모두 주고받는 대화로 어우러진 그 소리와 광경은 참으로 가슴 뭉클한 장면이었다.
40분 동안의 원탁 토론으로 나온 의견을 모두 모아보니 24개나 되는 상징이 모아졌다. 주민들의 마음속에서 나온 마을 상징 후보들을 한 번 읊어보자.
동백동산, 먼물깍, 동굴, 도토리, 제주고사리삼, 반못, 선흘분교, 마을공공시설, 마을담, 4.3성터, 가시나무 도토리, 밤오름, 양하, 밧덴물, 곤물통, 백서향, 오소리, 멍석, 유채꿀, 댕유지, 고사리, 말·소, 엉덩물·새로판물, 혹통·돗썩은물, 신낭알·불칸낭까지 그 면면이 다양하고 재미있다. 제주어에다가 지역의 역사가 담긴 것들이라 죄다 해설이 필요한데, 일이 커지므로 안타깝지만 생략하도록 하자.
이 후보들을 모두 벽에 써넣으며 자신이 낸 의견에 대한 이유와 지지를 호소하는 발표가 이어졌고, 이번에는 한 사람당 다섯 표씩 던질 수 있는 투표에 들어갔다. 어느새 흥이 오른 마을 주민들이 스티커를 다섯 장씩 받아 쥐고는 벽에 우르르 모여들어 여기에 붙여라, 저기에 붙일 거다, 내가 낸 건 어디 있냐, 시끌벅적한 가운데 마음에 둔 후보를 찾아 혹시 떨어질까 스티커를 야무지게 붙이는 모습은 장관을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