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구일만 햄릿>에서 오필리어 역할을 한 임재춘 조합원.
진동젤리
콜트-콜텍 해고자의 연극 도전기, 우린 이미 '정의'를 만났다콜트-콜텍 해고자들이 출연한 연극 <구일만 햄릿>의 연출자 권은영의 연극계 지인은 공연 관람 후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신의 한 수!" 임재춘 조합원이 오필리어 역을 맡은 것에 대한 소감이었다. 오필리어는 공연 내내 인기 캐릭터였다. 그가 흰 옷에 고운 분칠을 하고 무대로 나오는 순간, 관객들은 "하악~" 비명을 지르고, 그의 행동과 그의 대사에 웃고 또 웃었다. 오필리어라는 배역의 특성에 임재춘 조합원 특유의 순수함이나 어눌함, 진지함이 조화를 이뤄냄으로써 관객들은 열광했다.
그는 말을 많이 더듬는 편이다. 관객들의 열광은 이른 새벽의 대본 연습과 함께 그만의 감수성과 상상력이 빛어낸 결과이다. 무엇보다 임재춘이 오필리어 역을 수락함으로써 "신의 한 수"는 이미 시작된 셈이다. 연극을 모르는 중년의 남성이 비련의 소녀 역을 선뜻 수락하기란 쉬운 일은 아닐 테니까. 그는, 그들은 그만큼 자신들의 이야기를 함에 있어 용감했다.
연일 매진이었다. 2013년 10월 7일 첫 번째 공연을 시작으로 10월 14일, 22~27일 동안 총 8회의 공연이 치러졌다. 이변에 가까운 매진 행렬은 12월 17일부터 22일까지 총 6회의 앙코르 공연으로 이어졌고, 역시나 매회 객석은 꽉 찼다.
오필리어 역을 맡은 임재춘 조합원뿐만 아니라 햄릿의 장석천, 덴마크 왕 클로디어스의 이인근, 왕의 측근 플로니어스와 선왕을 맡은 김경봉 조합원은 그들에게 가장 잘 맞는 역을 맡아 매회 성장했다. 그리고 문화연대 활동가인 최미경님이 "아저씨들"과 함께하고자 왕비 거투루드를 맡아 열연하였다.
공연 연출 및 스태프 일을 두루 맡아 진행한 '진동젤리'는 '막무가내 종합예술집단'이라는 이름만큼이나 웬만해선 누구도 말릴 수 없는 '막무가내 정신'의 단체다. "아저씨들"이 공연 출연을 수락할 때는 매우 흔쾌했다. 하지만 연습 자세가 처음부터 성실하진 않았다.
연극 연습은 하필 무더위 한복판의 7월부터 시작됐고, 천막 농성장은 차 소리가 요란했다. "아저씨들"은 해고무효 소송 서울고법 판결을 앞두고 각종 시위와 연대활동, 콜밴(콜트-콜텍 해고자들이 만든 밴드) 공연으로 연일 바빴다. 게다가 웬만해선 말릴 수 없는 고집스러움과 뻣뻣함, 쿨하다 못해 무심에 가까운 농땡이를 종종 보여주기도 했다. '진동젤리'는 꽤나 타들어가는 심정으로 그들 곁을 지켜가지 않았을까 싶다. 열의뿐만 아니라 담백하고 지극한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지 않고서는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연극 대사 중 이런 말이 있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 8년의 농성이 실현하고자 하는 정의는 인지상정 아닐까. 정리해고의 요건이 불충분했다면 복직이 인지상정이고, 사측이 그 책임을 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무엇보다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는 측은지심을 실현하는 것. 그것이 정의라면 '진동젤리'는, 특히 공동연출자인 '매운콩'과 '죠스'(권은영)는 정의로운 사람들이다. 이미 우리는 콜트-콜텍 해고자들의 연극 도전기에서, 7년 농성과 햄릿의 줄거리를 하나로 꾀어낸 '진동젤리'의 새로운 실험에서 정의를 만나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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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련의 소녀'로 변신한 아저씨... 관객들은 "하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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