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햇볕이 시장에 내리깔리기도 전 이흔현 사장(우측)과 그의 아들 이동호씨가 입김을 내뿜으며 떡에 콩고물을 묻히고 있다.
임경호
새벽 5시에 문을 연다는 주인의 말에 조금 일찍 도착한 나는 시장을 한 바퀴 둘러본다. 굳게 닫힌 가게들의 문 앞으로 소복 눈이 쌓여 있다. 컴컴한 골목길 사이로 하나씩 불을 밝힌 가로등이 옛 시장의 정취를 북돋아 준다.
모래내 시장은 서울 도심의 이름난 시장들과 달리 아직 개발이 이뤄지지 않았다. 현대화의 혜택을 입지 못한 것이 모래내의 단점이라면, 간판이나 차광막 등 사소한 부분까지 옛 것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 모래내의 장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옛 시장의 추억을 언급할 때 모래내를 떠올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떠올리며 시장을 걷다 보니 어느새 5시가 다 됐다. 한 귀퉁이를 돌아서면 서울떡집인데 어느새 '드르륵' 셔터문 올리는 소리가 들린다. 시간 맞춰 도착한 이 사장이 입김 가득 내뿜으며 가게를 연다.
셔터 속 가게에는 문이 없다. 투명한 비닐 막을 문 대신 사용한다. 한 쪽 모서리의 비닐을 돌돌 말아 올려 문처럼 공간을 내거나 추운 겨울에는 아래로 내려서 찬 공기를 막는다. 한창 추운 새벽에 출근한 이 사장은 오자마자 비닐을 걷어 올린다. 떡을 만들기 위해서다. 떡을 찌는 과정에서 김이 많이 나는 탓에 영하의 날씨에도 안팎의 구분이 없다.
떡 찌는 남자이른 새벽의 떡집은 이 사장의 전쟁터다. 춥든 덥든, 사람이 있든 없든 묵묵히 떡 만들기에 몰입한다. 끊임없이 물을 뿌려야 하는 탓에 장화로 갈아 신고 앞치마를 동여맨다. 그에겐 떡과의 전쟁, 서막인 셈이다.
전날 불려놓은 찹쌀과 멥쌀을 확인하는 것이 시작이다. 대야에 가득 담긴 물을 따라 버리고 이내 쌀을 분쇄기에 붓는다. 기계가 돌아감과 동시에 고운 입자의 쌀가루가 아래로 흘러내린다. '웅웅-'거리는 기계 소리에 잠시 이 사장이 허리를 펴는 가 싶더니 다시 분주히 몸을 놀린다. 아무도 없는 아침의 그는 홀로 바쁘다.
쌀가루가 소복이 담긴 대야에 적당량의 물을 섞어 휘저어 준다. 그리고 다시 분쇄기를 돌린다. 다시 한 번 곱게 빻은 쌀가루를 분쇄기 옆 사각 틀에 옮겨 담는다. 적당히 가루를 담고 나자 사각 틀을 이중 삼중으로 올려 쌓는다. 다시 쌀가루를 담는다.
그렇게 쌓인 사각 틀 사이로 뭉게뭉게 김이 피어오른다. 찜통 세 대가 동시에 김을 내자 본격적으로 떡이 만들어진다는 느낌이 든다. 가래떡이나 찹쌀떡, 인절미 등으로 재탄생할 쌀가루들이 천으로 덮어놓은 틀 아래서 조용히 몸집을 부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