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증세' vs '미래의 부채'... 당신의 선택은?

부모세대 '증세공포'로 자식세대에 부채 떠넘기면 안돼

등록 2014.02.14 15:01수정 2014.02.14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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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확대는 이제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한국 사회 최대 현안이 되었다. OECD 국가 중 '노인 빈곤율 1위, 노인 자살률 1위'라는 상황이 더 이상의 복지논쟁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당장 무슨 조치라도 하지 않는다면, 경제성장 신화의 자부심도 무위에 돌아갈 처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도 즉각적인 복지확대를 요구하기는 마찬가지다. 부모 숫자만큼도 되지 않는 아이들로는 대한민국이 점점 작아지기 때문이다.

복지는 당장 급한 사회안전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투자이기도 하다. 배고플 걱정이 없고, 아파도 치료비 걱정이 없다면 그만큼 더 적극적이고 모험적으로 생업에 도전할 수 있다.

이른바 강소국가일수록 개방경제에 대응하여 복지를 더 튼튼히 해 두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도 모델이 된다.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라도 내수확대가 절실한데, 복지확대는 가장 좋은 소비 증진책이기도 하다. 복지확대를 통해 경제성장의 선순환을 기할 수 있는 것이다.

복지는 소비증진∙경제성장 가져오는 사회적 투자

그러나 복지는 돈이 필요하다. 돈 없이 하겠다는 복지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더구나 고령화 속도가 워낙 빨라서 복지재정은 가히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미 기초연금이 재정부담을 이유로 공약 후퇴를 겪었지만, 4대 중증질환 보장도 마찬가지다. 보육지원도 마찬가지다. 누가 돈을 댈 것인지는 생각지도 않고, 덜렁 국회가 법을 통과시키는 바람에 부담이 대폭 늘어난 지방정부들이 중앙정부와 집단으로 다투기도 했다.

무늬만 복지라고 했던 박근혜 대통령도 이런 상황일진대, 그보다 더 많은 복지를 약속했던 문재인 후보가 집권했더라면 어떤 일이 생겼을까? 최근 안철수 의원이 신당의 비전을 얘기하면서 10년 내 복지 예산을 2배로 늘리겠다는 약속도 비슷한 걱정이다.


국제적인 기준에서 보면 아직 우리나라는 세금 부담도 적고, 복지도 적은, 이른바 저부담-저혜택 국가이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복지를 늘려서든, 아니면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차원에서든 복지재정은 앞으로 급증할 수밖에 없다. 현재의 확대 추세가 계속되기만 해도 사실 10년 내 복지예산이 2배로 늘어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누가 어떻게 부담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는 모두 입을 닫고 있다. 정치인들의 정답은 "낭비를 줄이고 탈루세원을 양성화함으로써 세금(세율)을 올리지 않고도 재정을 충당한다. 그래도 정히 재정마련에 어려움이 있다면 국민적 합의를 거쳐 다른 대안(즉, 증세)을 고려할 수 있다"는 식이다. 증세라는 단어를 꺼내는 순간 표가 떨어진다는 두려움이 있다. 건강보험료도 마찬가지다. 혜택이 늘어나면 당연히 보험료가 올라야 하지만, 끊임없이 안 올린다는 얘기만 되풀이 하고 있다.


'돈 안 쓰는 복지'는 말장난

복지는 늘려야 되는데, 부담이 따라서 늘지 않는다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 부채로 떠넘기는 도리밖에 없다. 일본이 대표적인데, 1990년대 GDP의 70% 수준이었던 국가부채는 최근 250%에 육박했다. 반면 소비세율은 5%로 세계 최하 수준이다.

증세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어느 정권도 나서려고 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오죽하면 여야 합의로 시행시한을 못 박았지만 막상 그 때가 닥치면 경기부양을 이유로 미뤄오기까지 했다. 우리도 벌써 그럴 조짐을 보인다. 정부가 발표하는 국가부채는 여전히 35% 수준이지만 현실은 다르다. 경제도 나쁘고 복지지출도 늘어난 데다, 이른바 부자감세까지 했는데도 국가부채는 여전하다.

도대체 무슨 마술을 부려서일까? 바로 공기업 부채나 부채로 잡히지 않는 통화안정채권 같은 것들 때문이다. 계산법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도 국가 부채가 GDP의 100%에 육박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지금의 증세'인가 '미래의 부채'인가 하는 문제는 가장 첨예한 세대전쟁의 이슈이다. 당장 정치적 발언권이 없는 미래세대들은 증세냐 부채냐를 선택할 권리가 없다. 반면 한창 경제활동이 왕성한 세대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표를 행사한다. 특히 70년대 이전 출생한 1, 2차 베이비붐 세대들은 자신들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무기로 강한 증세 반대 블록을 형성하고 있다.

청년세대에게까지 세금인상의 공포를 조장하여 끌어들이는 중이다. 세계 어느 나라든 직접세의 약 80%는 상위 10% 소득자들이 부담하고 있다. 저소득 청년세대들로서는 부담보다 혜택이 더 클 수밖에 없지만, 베이비붐 세대들의 세금 공포에 기꺼이 동조하는 중이다.

책임 있는 정치집단이라면 세대 간 세금 부담에 대한 밑그림을 제대로 공개하고 평가받아야 한다. 아껴 쓰고, 제대로 쓰고, 숨겨진 세금을 제대로 걷어서도 충당할 수 없는 재정은 어떻게 할 것인가? 수퍼리치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추가로 필요한 돈의 10분의 1도 충당할 수 없다. 결국 보편적인 증세가 불가피하다.

책임있는 정치집단이라면 '세대간 세금부담' 밑그림 제시해야

소득세 감면을 줄이든 부가가치세를 올리든 재정확충을 위한 별도 조치는 어쩔 수 없다. 물론 미래세대도 혜택을 받게 될 지하철, 임대주택 같은 기반시설들은 일정 정도 부채로 돌릴 수 있다. 하지만 당장의 복지혜택을 늘리면서 이를 은연중에 다음 세대의 부채로 떠넘기는 것은 나쁜 세대정치의 전형이다.

복지지출과 재정확대의 로드맵을 제시하고 이를 여야가 정치적으로 합의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야당도 집권할 욕심이 있다면, 얼마 전 황우여 여당 대표가 제안한 초당적 국가미래전략기구 설치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 재정 때문에 겪는 박근혜 정부의 곤욕이 머지않아 야당의 몫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칼럼은 한국미래발전연구원 홈페이지(www.futurekorea.org)에 동시 게재합니다.
* 김수현 세종대 도시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참여정부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사회정책비서관, 환경부 차관 등을 지냈으며 <부동산은 끝났다>(2011) 등의 저서를 냈습니다.
#세대전쟁 #증세 #복지확대 #김수현 #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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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래발전연구원(http://www.futurekorea.org/)은 민주주의와 한국사회의 지속가능 발전을 위한 진보적 정책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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