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 누구나 얌전해지는 이발소, 낙원동에 열 개가 넘게 있다.
김종성
마침 기자도 머리가 많이 길어서 '장수 이용원'에 들어가 머리를 깎았다. 순전히 가위로만 머리를 깎는 '가위손' 이발사 아저씨의 손끝에선 '사각사각' 경쾌한 소리가 들려온다. 거울너머로 머리에 염색약을 바르고 일렬로 얌전히 앉아있는 할아버지들 모습이 말 잘 듣는 학생들 같아, 슬금슬금 웃음이 새어 나왔다.
다들 내 아버지뻘의 분들이라 그런지 어렵기도 하고 가슴 한 구석이 짠하기도 하다. 삶에 큰 트라우마를 남긴 전쟁과 피난, 배고픔을 겪고 (어떤 분은 월남전까지) 산업개발시대엔 새벽부터 밤까지 열심히 일만 한 덕택에 자식이나 젊은 사람들과 대화하고 친화하는데 서툰 어르신들. 결국 자식 세대와의 갈등과 불화로 원치 않던 '꼰대'가 돼버렸다. 전철 경로석이 다른 일반 좌석에서 뚝 떨어져 나있듯, 도시에서 노인은 가깝지만 먼, 낯익으면서도 낯선, 그래서 애잔하면서도 불편하기도 한 존재가 되었다. 어쩌다 나이 드는 일 자체가 문제이자 고통이 돼버렸는지···
더욱 큰 비극은 집 장만하느라 가족 부양하느라 정신없이 살다 보니 미처 '놀이'를 배우지 못했다는 것. 몰입할 놀이가 없는 남자들은 황혼기에 갑자기 생겨난 잉여시간이 버겁다. 이렇게 나이를 먹을수록 가정과 사회에서 마땅히 설 곳을 찾지 못하고 외면당하는 도시에서 할아버지들이 한참을 방황하다 당도한 곳이 바로 낙원동이다. 이곳은 노인들의 허한 마음을 달래주는 도피처이자 안식처다.
어스름한 저녁 무렵이 되면 포장마차의 안주인 김치 찜, 생선구이가 철판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소리가 나면서 어르신들의 수다도 정점에 다다른다. 유난히 이곳엔 동네이름에서 따온 '낙원'이라는 이름의 식당과 업소 간판이 많다. 넉넉하지는 않아도 어르신들을 정답게 품어주고 보듬어 주는 것이 정말 '낙원'의 모습과 닮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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