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 11일 박왕자 씨가 북한군 초병이 쏜 총에 피격된 금강산해수욕장 바다로 해수욕장과 군사보호시설 사이에는 녹색 팬스가 쳐져 있었고, 10미터 정도는 사람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모래톱이었다.
박도
금강산은 천하명산이다. 그런 탓인지 금강산은 이름도 많다. 봄에는 금강산(金剛山), 여름에는 봉래산(蓬萊山), 가을에는 풍악산(楓嶽山), 겨울에는 개골산(皆骨山)으로 불리며 이밖에도 열반산, 지달산, 중향산 등의 별칭이 있다.
일찍이 중국의 시인 소동파는 "원컨대 고려국에 태어나서 금강산을 한번 보는 것이 소원(願生高麗國一見金剛山)"이라고 그 절경을 감탄하였다. 그리고 어느 화가는 "금강산의 경치는 상상을 초월한 산수화로, 내 머리로써는 도저히 구상할 수 없는 한 폭의 산수화"라고 그 신묘한 경치에 넋을 잃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금강산은 휴전선 밖이라 우리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철옹성 같은 이 금강산 길을 열기까지는 강원도 통천 두메산골에서 태어난 한 소년의 인간 승리적인 노력이 있었다. 아버지가 소 판 돈을 훔쳐 서울로 올라간 소년이 반세기가 넘어 소 1000마리를 몰고 고향으로 돌아가자 휴전선 철조망도 감동하여 뚫렸다.
이 감동 드라마는 모든 겨레를 울려 마침내 1998년 11월 18일 금강산행 바닷길이 열리고, 2003년 2월 21일 금강산 육로 시범버스가 휴전선 철조망을 넘었다. 어느 정치인도 못한 일을 그는 해냈다. 그는 현대그룹 고 정주영 회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