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 외치는 민주당 "특검만이 답"민주당 김한길 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7일 오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특검촉구 및 김용판 부실수사 규탄대회'를 열고 황교안 장관 해임과 특검 즉각 실시를 촉구하고 있다.
남소연
"봉숭아 학당 같아요."국정원 대선개입 축소·은폐 의혹으로 재판을 받았던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해 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리자 민주당은 7일 오전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국회 본청 계단에서 규탄대회를 열었습니다.
127명 중 60여명의 국회의원들은 본청 계단에서 규탄사를 읽고 "특검 실시" "황교안 해임"을 외쳤습니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한 기자는 냉소적 어조로 민주당을 봉숭아 학당에 비유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시계를 거꾸로 돌려보지요. 지난해 12월 3일 민주당은 새누리당과 원내대표-원내수석부대표간 4자회담을 열고 국정원 개혁특위와 정치개혁 특위에 합의한 뒤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 특검은 계속 논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시 민주당은 "국회 차원에서 국정원 정치개입 의제를 논의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90%는 승리한 것"이라고 자평했습니다. 전병헌 원내대표는 기자들에게 "최선을 다한 결과"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지도부의 평가와 달리 당내 여론은 물론 시민사회 여론도 싸늘했습니다. 정의당 등 진보정당들과 국정원 시국회의 등 시민단체는 "민주당이 특검을 포기했다"고 선언했습니다.
왜 민주당 지도부는 4자회담에서 특검을 놓았나 당내 여론도 격화됐습니다. 재선의 이인영 의원은 당시 한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국정원 선거개입의 역사적 진상을 규명하고 재발방지의 확실한 대책을 마련하자 이렇게 기대했던 국민의 바람은 (특검 계속논의에 대해) 미흡하게 평가하지 않을까 싶다"며 "특검 없는 특위가 어떤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지 여전히 의문이신 분들도 많을 것으로 본다"고 지적했습니다.
사실 국정원 개혁특위와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사건의 진실규명은 연관돼 있기는 하지만 별개의 문제입니다. 2012년 대선 당시 벌어진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의 구체적 진실이 명확히 확인돼야 그 내용에 따른 국정원 개혁의 내용이 규정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얼마나 문제가 심각했는지 정확히 파악이 안 된 상태에서 무조건 개혁의 방향을 정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따라서 '선 특검-후 특위' 주장이 제기됐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민주당 지도부는 '선 특위-후 특검'으로 정리했지요. 그리고는 예산과 법안 등 새누리당의 요구사항에 모두 순응했습니다. 당시 민주당 안에서는 "여당에 협조 잘하는 게 야당의 역할"이라는 자기 합리화도 횡행했지요.
정성호 당 원내수석부대표는 특검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표출했습니다. 기존의 검찰수사에서 더 진전될 게 뭐가 있겠냐며 특검으로 수사 성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특검은 손에 쥐고 흔들 때 가장 강력한 카드지 정작 쓰면 별 효력이 없다는 설명도 곁들였지요.
민주당 법률위원장인 박범계 의원은 7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작년 12월 예산국회 때 특검카드 때문에 예산의 발목을 잡을 수는 없었다"며 "개인적으로는 그것도 감수했어야 했다, 이렇게 생각하지만 당시 정서로는 무리였다"고 말했습니다.
민주당의 한 의원도 "민주당이 새해 예산안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식의 여론공세가 상당한 부담이었다"며 "당시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전했습니다.
그렇게 연말 국회가 끝났고 새해 2월 국회가 열리자마자 김용판 전 청장에 대한 무죄 소식이 정치권을 강타한 것입니다.
민주당 법사위 소속 위원들은 지난해 여름 서울시청 앞 광장에 텐트를 치고 김한길 대표가 노숙농성을 할 때부터 '김용판-원세훈 무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박근혜정부가 자신들의 정통성을 유지하려면 반드시 두 사람에 대해 선거법상 무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박 대통령이 지난해 9월 16일 국회 사랑채에서 열린 여야 대표 3자회동에서 "법원의 판결이 나오면 그 때 책임을 묻겠다"고 한 것도 중요한 포석 중 하나로 해석했습니다.
'김용판 무죄'는 완전히 예상을 빗나간 판결이라는 것은 어쩌면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지도 모릅니다. 무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도 새누리당과 붙어 제대로 된 담판을 짓거나 대처하지 못한 민주당이 자신들의 불찰을 숨기기 위한 말로도 볼 수 있으니까요.
김 전 청장에 대한 무죄 소식이 타전된 6일과 7일 민주당 의원들은 삼삼오오 국회 내 찻집과 의원 사무실에 모여 지도부에 대한 원망을 쏟아냈습니다. 공개비판을 하면 곧장 '지도부 흔들기'나 세력다툼으로 비춰질까봐 매우 조심하는 눈치입니다. 김한길 대표가 "내무반에 총질하지 말라"는 경고를 내려 민주정당 안에서 자유롭게 '비판할 권리'마저 봉쇄해버렸다는 진단도 나옵니다. 보수언론이 짜놓은 친노-비노 프레임에 갇혀 옴짝달싹 할 수 없게 된 의원들의 입에선 "무기력감을 느낀다"는 말이 터져 나옵니다.
"그래도 특검으로 압박해야""의원직을 사퇴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우릴 봐줄까?" "다 같이 삭발을 할까?"
민주당 의원들이 온갖 구상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하나도 채택되는 것은 없습니다.
신경민 최고위원은 7일 오후 1시30분 대책마련을 위한 회의를 열기도 했습니다. 이 회의에 참석했던 재선의 전해철 의원은 7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국정원 사건에 대해 수사를 잘해오던 기존의 수사팀이 해체된 이후 최소한의 공소유지도 어려워진 만큼 특검은 불가피하다"며 "현재 국정원 사건 중 계속 수사해야 하는 것도 있고 또 군 사이버사령부의 대선개입 의혹 문제도 미진한 것들이 있기 때문에 추가로 기소해야 할 것들은 기소하면서 특검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전 의원은 "특검이 현재 진행중인 재판에도 영향을 준다"면서 "1심 재판부도 심증이 없는 게 아니라 증거불충분 등의 사유를 들고 있기 때문에 법원도 이 사건에 대해 합리적 의심은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어제 재판결과를 보니 더욱더 특검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며 "절박한 인식으로 반드시 특검을 관철해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