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아라뱃길 이름도 짝퉁경인아라뱃길이라는 이 이름. 아라가 전혀 의미 없는 말임이 드러나도 이 이름을 그대로 달고 있어야 하는가? 가짜 명찰을 찬 국가시설인 셈이다. ‘비슷하지만, 아닌 것’이 사이비(似而非)다. ‘경인아라뱃길’는 사이비 수준도 못된다. (경인아라뱃길 홈페이지)
강상헌
왜 그렇게 말하느냐고 묻는 게 당연하다. 할 말이 없다. 다만, '아라는 바다가 아니다'라는 말 밖에는. 또 말할 필요가 없다. 아라라는 말은 바다와 전혀 상관이 없으니. 되레 묻는다. 아라가 바다인 이유, 아라가 바다였던 이유를 설명하라고. 그 근거는 무엇이냐고. 왜 우리는 아라를 바다로 생각해야 하느냐고.
어쩌다가 난데없이 '아라'가 '바다'라는 괴이한 말이 나돌게 됐을까? 책임과 원인을 따지려면 '과학수사'라는 범죄현장감식(CSI)이나 포렌식(forensic 법의학) 프로그램 또는 프로파일링(profiling)이 필요할 수 있다. 이 언어현상에 대해서는 전문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아라가 바다가 아니라는 사실은 사전에서 바로 포착된다. '아라'는 명령이나 감탄의 뜻으로 말을 끝맺는 어미(語尾)일 뿐. 고어 포함해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원 발행)에는 그 뜻 말고는 없다.
제주도에 아라동(我羅洞)이 있다. 제주시의 제주대 목석원 부근, 섬 안이지만 바다에 면하고 있지 않은 곳이다. 불교 수행자 중 높은 단계에 이른 이를 아라한(阿羅漢)이라고 한다. '-漢'은 '어떤 사나이'의 뜻. 아라리요의 아라도 있다. 우리말과 '아라'의 몇 안 되는 인연이다. 모두 '바다'와는 상관이 없다.
고어(古語) 또는 어원(語源) 전문가 중에는 물[수(水)]의 뜻으로 추정되는 '아리'라는 말이 지명 등에서 아리수(한강 또는 압록강의 옛 이름)처럼 쓰였던 것이 이런 오해를 불렀을 수 있다고 귀띔하는 이도 있다. 그 아리도 바다와의 관련성은 없다는 말이다. 이 '아리 바다 사태'는 그런 정도의 근거와도 상관이 없는, 다만 인터넷 현상으로 본다는 것이다.
순우리말 토박이말 고유어 등 우리 말글에 대한 애틋한 사랑은 아름답다. 더 공부하고 장려해야 한다. 한자어나 외래어도 가능하면 우리말을 찾아 바꿔 써야 한다. 없으면 합리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아무 근거도 없는 엉뚱한 말을 들이대며 '이것이 바다다'라고 억지 부리는, 이런 언어의 표류(漂流)는 건강하지 않다. 검증과 여과장치가 없는 것도 문제다.
이 '표류'에는 치명적인 계기가 있었다. 국가 공식 정책채널에 장관이 발표한 것이니 꼬투리를 달 이유가 있을까? '4대강 일자리에서 생긴 돈 지역으로 흐를 것'이라는 인터뷰에서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 '아라'란 '바다'를 뜻하는 순우리말로, 아라뱃길은 한강과 서해를 연결하는 수로를 건설하는 사업이지요..." ('정책브리핑' 2009년 5월)'정책브리핑'은 그보다 앞선 2007년 12월 '해양수산부는, 극지연구소에서 실시한 국내 1호 쇄빙(碎氷)연구선의 명칭 공모전에서 대상에 아라온(ARAON)이 선정됐다고 밝혔다'는 발표를 실었다. 바다를 뜻하는 순우리말 '아라'와 모두의 뜻 관형사 '온'을 붙여 이 배가 세계 모든 해역을 누비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덧붙였다.
'바다가 아라라면'이라는 이 문제, 시민들의 질문이 많았던 것 같다. 국립국어원은 홈피 질의응답 페이지에서 '아라는 바다가 아닐 것이다' '옛말에서도 아라와 바다의 관련성을 못 찾았다'는 식의 간단한 답변만 거듭 올렸다.
언어훼손을 저어하는 시민들의 중요한 제보마저 못 본채 지나친 것이다. 국립국어원은 뭘 하는 곳이지? 우리의 세금이 쓰이는 현장의 모습이다. 듣보잡 말 '아라'가 온통 바다로 도배가 되도록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아니라면서! 아닌 줄 알면서도 눈만 깜박거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지시'가 있어야 하나?
전 정종환 장관, 당신은 어떤 근거로 아라가 바다라고 했나요? 해양수산부나 아라온호 관계자 여러분들, 그 '아라'는 어디서 온 것인가요? 인천시립무용단장님 등에게도, 정색하고 이렇게 물어야 할 일이다. 그 장관이나 해당기관들은 '인터넷에서 봤다'고 할지 모른다. 아마 그럴 것이다. 참 허망한 것이 우리 사회의 '지식'이려니. 나라의 기관들이.
'아라는 바다다'라는 말 적힌 인터넷 페이지에는 '아라는 아이 라인(eye line)의 준말'이라는, 어린 여성이 쓴 것 같은 글도 있다. 네티즌들이 재량껏 만들어 올리는 페이지다. 또 그 곁에는 '그렇다면, 바다는 아름다운 순우리말이 아닌가요?'라는 질문도 보인다. 인터넷 지성(知性)의 한계이자 희망인가. '아라=바다'의 황당한 등식은 아마 이렇게 시작됐을 것이다.
기억하자, 아라는 바다가 아니다. 바다가 아름다운 순우리말이다. '아라'라는 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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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등에서 일했던 언론인으로 생명문화를 공부하고, 대학 등에서 언론과 어문 관련 강의를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얻은 생각을 여러 분들과 나누기 위해 신문 등에 글을 씁니다. (사)우리글진흥원 원장 직책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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