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 선고 받은 김용판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은폐혐의로 재판을 받아온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6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법정을 나오고 있다.
권우성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을 은폐·축소한 혐의로 기소됐던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해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1부 부장판사 이범균)가 6일 오후 무죄를 선고했다. 김 전 청장은 18대 대선 직전이던 지난해 12월 국정원의 대선 개입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발견했다는 보고를 받고도 이를 제외하고 수사 결과를 발표하도록 지시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검찰이 내란음모죄로 기소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에게 20년을 구형한 것이 불과 사흘 전. 기계적인 균형은 커녕 상식과 법치를 무시한 사법부의 판결에 비난의 목소리가 들끓을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판사 출신이자 민주당 법률위원장인 박범계 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이렇게 탄식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 김용판이 무죄라니…. 법은 상식과 법감정 위에 있는 것인가 ? 부끄럽다. 내가 법조인이라는 것이."또 얼마나 많은 법조인들이 이런 장탄식을 날리고 있을까. 언론인 출신인 민주당 박영선 의원도 허탈함을 표하긴 마찬가지였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풉' 한 마디로 정리한 것과는 달리 절절한 절망이 담겨있다.
"너무 충격이 커서 한동안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김용판 무죄…. 대한민국이 죽어가고 있군요. 권은희 과장 진술이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재판부. 사법부도 유신사법부로…. 우리는 조국의 숨소리에 느낌 없이 살고 국민들은 속삭일 뿐이라는 스탈린시대의 싯귀가…."예견(?)됐던 '김용판 무죄'... '내부고발' 권은희 어쩌나 이날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김 전 청장이 국정원 댓글 분석과정서 투명성을 담보하려 했다"며 "직권을 남용해 수사를 방해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또 "권은희(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진술이 객관적 사실과 어긋나는 부분이 많을 뿐 아니라 다른 증인의 진술은 모두 거짓이고 권은희의 진술만 진실이라고 볼만 할 근거가 없다"고도 했다.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누구인가. 국정원 불법 선거개입 수사과정에서의 유일한 내부고발자로 국민들의 응원과 공감을 받았던 이가 아닌가. 반면 김용판 전 청장은 지난해 10월 경찰청 국정감사와 앞선 8월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함께 선서를 거부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 거부 사유가 걸작이었다.
"헌법과 법률에 의해서 국민의 기본권인 방어권 차원에서 선서를 거부하며 법률에 의해서 거부 사유를 소명하겠습니다. 경찰 생활하면서 언제나 떳떳하고 당당해 왔다고 자부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이번에 기소되는 과정을 통해서 내 스스로 떳떳하고 당당한 게 능사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스스로 떳떳한 것이 능사가 아니라던 피고인 김용판 전 청장에게 면죄부를 준 재판부는 또 "당시 (경찰의) 처리에 대해 다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쉬움이 남는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에게 실체를 은폐하고 허위 수사결과를 지시하려 한 의도가 있었다고 판단하기는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명예를 걸고 김용판 전 경찰청장의 외압을 내부고발했던 이에게는 '신빙성이 없다'는 모욕을 던져주고, 김용판 피고인의 명예를 지켜준 재판부. 김용판은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말을 굳게 믿고 있었다"는 소감과 함께 재판부에 감사를 표시했다고 한다. 절이라도 올리지 않은 게 어색할 정도다.
사실, 김용판 전 청장에 대한 무죄선고는 어느 정도 예견돼 왔다. 채동욱 검찰총장이 석연치 않은 '혼외 아들' 논란으로 '찍어내기' 당하고, 윤석열 수사팀장 등 국정원 부정선거 수사팀이 어이없이 해체될 때부터 말이다. 오죽했으면, 인터넷 상에선 '김용판 판결'을 덮기 위해 연예인 스캔들이 터질 거란 예측이 나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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