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논으로 변한 합니하 신흥무관학교 옛터
박도
1910년 8월 29일, 광화문 경복궁 근정전에 일장기가 펄럭였다. 그와 동시에 519년 동안 이어져 오던 조선왕조가 망했다. 하지만 뜻있는 우리 독립지사들은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겠다는 광복의 뜻을 품고 국외독립기지를 물색했다.
1911년 봄, 독립지사 가운데 이회영·이시영·이동녕·이상룡·김동삼 등은 수십 명의 가족과 친지들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중국 지린성 류허현 삼원보에 이르렀다. 이분들은 먼저 자치기관인 경학사를 조직하고, 신흥강습소를 세웠다. 이 신흥강습소가 신흥중학교로, 이후 신흥무관학교로 확대·개편됐다. 일제강점기, 이곳에서 수많은 독립군이 배출됐다.
우리 답사단 일행(안동MBC특별취재반)은 단둥에서 압록강을 취재하다가 중국 공안에게 여권을 빼앗겨 불행 중 다행으로 그날 오후 늦게야 돌려받았다(관련기사 :
압록강변서 중국공안에 여권을 압수당하다). 원래는 오전 10시께 출발하면서 옛 조상들이 밟았던 피눈물의 망명길을 그대로 카메라에 담으려고 했지만, 뜻밖에 공안에게 걸려 여의치 못했다.
그날 저물녘에 출발해 이튿날(2004년 5월 27일) 오전 2시에야 길림성 통화에 도착했다. 한 빈관에서 단잠을 자고 난 뒤 우리 일행은 한 방에 모여 일정을 상의했다. 그 결과 답사는 두 팀으로 나뉘어 한 팀은 관광 목적에 맞게 통화 시내를 두루 돌다가 점심 식사 후 매화구로 이동하기로 했다. 다른 한 팀은 현지 택시를 빌려 합니하 신흥무관학교 옛터로 가기로 결정했다. 아무래도 단동의 공안이 통화로 연락했을 것 같은 예감 때문이었다.
나는 답사팀에 속했다. 택시는 험한 산길을 한참 달린 끝에 오전 11시 30분, 마침내 '광화(光華)'에 이르렀다. 거기서 20여 분 더 달리자 마침내 합니하 신흥무관학교 옛터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