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와 질병은 유전? 진실은 이렇습니다

[서평] 홍윤철의 <질병의 탄생>... 문명과 환경 변화 탓이 커

등록 2014.02.03 20:25수정 2014.02.04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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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책겉그림 〈우리는 왜, 어떻게 질병에 걸리는가〉

책겉그림 〈우리는 왜, 어떻게 질병에 걸리는가〉 ⓒ 사이

"키는 집안의 내력적인 영향이 크다고 알려졌지만 키와 관련이 있다고 알려진 40개의 유전자가 실제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은 내력적인 영향의 5퍼센트에 불과하다. 만성질환인 당뇨병이나 관상동맥질환의 경우도 지금까지 밝혀진 유전자로는 집안의 내력적인 영향을 5퍼센트 이상 설명하기 어렵다."

홍윤철의 <질병의 탄생>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 책은 인간이 언제부터 질병에 시달려 왔는지, 왜 아직도 질병으로부터 해방되지 못하고 있는지, 그리고 진정으로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지 등을 인류문화사적으로 쓴 책입니다.


그 가운데 위의 내용은 유전자만으로 인간의 질병을 이해하고 설명하려는 시도가 미궁에 빠져버렸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유전자로 질병의 대부분을 설명할 수 있다는 신화는 처음부터 맞지 않았다는 것이죠. 질병을 사라지게 할 방법이 단순히 유전자 조작이나 대체를 통해서 가능한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만성질환은 유전이라고? 사실은...

사실 이 책이 질병이 발병하게 된 환경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이유도 그것입니다. 수렵채집생활에서 농업혁명시대로, 그리고 산업혁명시대로 발전한 인간의 환경과 관련하여 발병한 질병들을 하나하나 추적하고 있는 것 말입니다. 이 책에선 8가지 환경요인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그런 것입니다. 수렵채집생활에서 농업사회로 전환되면서 인류를 곡물을 주식으로 하게 되었지만, 그 대신에 단백질 섭취나 과일과 채소의 섭취가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는 점이죠. 그것이 비타민과 같은 필수 영양소의 부족을 초래했다는 설명입니다.

"농경으로 전환된 초기에는 건강 상태가 나빠지고 수명도 수렵채집 시기에 비해 짧아졌다. 영양소 섭취의 질적 측면에서 보면 수렵채집 시기에 비해 나빠졌기 때문에 면역 상태도 떨어졌다. 이는 농경사회의 변화된 환경에서 노출되는 여러 가지 병원체의 공격에 대한 저항력을 떨어뜨려서 감염성질병에 걸리게 한 이유가 되기도 했다."(98쪽)


그 밖에도 이 책은 만성질환과 햇빛의 관계라든지, 질병의 배후와 기후관계라든지, 포도주를 비롯한 술과 관련된 질병과 유전자의 관계라든지, 담배를 피우면서부터 생기게 된 뇌의 중독 등 인류의 질병에 관한 8가지 환경요인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 3부에서는 문명이 만든 8가지 질병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른바 병원균의 전성시대를 불러 온 전염병, 비만이 될 수밖에 없는 생물학적 프로그램, 사는 곳에 따라 달라지는 고혈압의 위험도 등이 그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문명이 만든 8가지 질병 가운데 당뇨병에 관한 게 그것입니다. 흔히들 당뇨병이 가족력처럼 유전적인 영향이 절대적이라고들 생각한다지만 그게 오류라고 합니다. 당뇨병 발생에 유전자 변이가 미치는 영향은 실은 10퍼센트도 안 된다고 합니다. 달리 말해 당뇨병은 칼로리 섭취와 에너지 소비의 불균형 때문에 생긴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발표된 논문들에 의하면 환경오염물질인 다이옥신이나 다염화비페닐 등에 많이 노출되면 당뇨병의 발생 위험도가 상당히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잔류성 유기화학물질이 우리 몸의 지방조직 등에 녹아 있으면서 서서히 방출되어 인슐린 저항성을 초래하여 당뇨병을 발생시킨다는 것이다."(268쪽)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지 알 수 있겠죠? 아시아가 미국이나 유럽보다 당뇨병 위험에 더 쉽게 노출되고, 그 발병 위험이 커진 이유를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성장기 이후의 고칼로리 섭취가 당뇨병을 불러온다는데, 최근 연구에서는 미세분진이나 벤젠 같은 대기오염물질이 인슐린 저항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예전에는 잘 사는 집안 아이들이 비만에 걸렸는데, 지금은 가난한 집 아이들이 고도비만에 걸릴 확률이 더 많다는 뜻을 충분히 이해할 것 같습니다. 그것은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경제발전을 꾀하면서 열심히 발버둥치는 아시아 국가들의 당뇨병 환자가 급속도로 늘고 있는 이유도 그와 같다는 뜻이죠.

그렇듯 이 책은 오늘날의 질병 증가가 수렵채집에서 농경사회로 진입하면서 맞이한 것들이라고 하죠. 그만큼 유전적인 요인보다는 자연환경과 생활환경의 변화에 따른 발병설이 더 타당하다는 설명입니다.

바꿔 말해 인류가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길도 그것에 달려 있습니다. 인류의 환경과 생활 습관을 수렵채집의 시기로 적절하게 바꾸는 것 말입니다. 그것은 곧 지구환경을 적극적으로 보존하는 길 외에 달리 방법이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질병의 탄생 - 우리는 왜, 어떻게 질병에 걸리는가

홍윤철 지음,
사이, 2014


#황윤철 #〈질병의 탄생〉 #당뇨병은 가족력이 아니다 #질병의 배후와 기후관계 #만성질환과 햇빛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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