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케나스(아일랜드 갤웨이, Coole Park, Co. 소장 : 이 사진은 위키피디아 저작권 공개사진입니다.)
Cgheyne
아우구스투스에게는 아그리파 외에 또 한 명의 걸출한 친구가 있었다. 마이케나스(Gaius Cilnius Maecenas, 기원전 70~8)라는 친구다. 이 사람이 어떤 역할을 한지는 아그리파에 비하여 확실치는 않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로마의 문화예술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이다. 그는 아우구스투스 재위 시절 로마의 최고 문학가이었던 호라티우스와 베르길리우스의 후원자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외에도 많은 문학가 혹은 예술가의 강력한 지원자였다. 후대 사람들이 문화예술의 후원자라는 의미의 단어로 만든 메세나(mecenat)는 그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다.
추측하는 바로는 마이케나스는 아우구스투스의 문화부 장관 혹은 선전부 장관 역할을 한 인물일 것이다. 그의 주된 책임은 아우구스투스 재위의 정당성을 풀뿌리에서 인정토록 하는 것이었다. 세종이 한글을 만든 다음 왕조의 정통성을 선전하기 위해 용비어천가를 지은 것을 상기하면 쉬운 상상이다.
그는 아우구스투스 권력에 우호적인 여론을 능숙하게 이끌고, 심지어 새로운 여론을 만들 정도의 능력을 갖춘 가신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아우구스투스의 왼쪽에는 무력을 관리하는 가신이자 대리인인 아그리파가, 그 오른쪽에는 문화와 예술을 담당하는 조력자이자 특별보좌관인 마이케나스가 자리를 잡았고, 이로써 아우구스투스의 황제정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역사가 로널드 사임은 아그리파와 마이케나스를 이야기하면서 이들 둘이 경쟁적 관계이었으며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말한다. 아그리파는 평민 출신으로 로마의 군인이자 농부의 덕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고, 반면 마이케나스는 좋은 집안(에트루리라 왕들의 후손)에서 태어나 공공연히 사치와 환락에 빠져 사는 사람이었다. 마이케나스는 한 연회에서 색다른 맛이라면서 어린 당나귀 살코기를 소개했고, 아그리파는 이를 역겨워했다.
둘은 적절한 선을 유지하면서 경쟁했지만, 최종 승리는 아그리파에게로 돌아갔다. 아그리파는 묵묵하고 비밀을 간직할 줄 아는 사람이었지만 마이케나스는 그 입이 문제였다. 그는 권력가들 사이에서 지켜야 할 비밀수호의 원칙을 한두 번 어겼고, 이로 인해 아우구스투스의 신임을 잃기 시작했다.
여하튼 이곳에서는 마이케나스의 역할에 집중해 보자. 권력이 그저 벌거벗은 채로 날뛰는 것만으로는 영속성이 없다. 그 권력이 오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권력의 정당성을 피지배자들이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 권력에 자발적인 충성이 생기고, 경쟁자로부터의 위협 없이 더욱 안전하게, 더욱 오래동안 가게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문화와 예술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다.
히틀러가 그저 물리적 힘만으로 독일국민을 나치즘의 노예로 만든 것이 아니다. 유구한 독일철학을 탄생시킨 독일국민들이 그저 총칼로 위협한다고 해서 나치즘의 신봉자가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무엇인가 자발적으로 나치즘을 자신의 사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수단이 발휘되었고, 히틀러는 이를 통해 성공적인 체제를 구축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큰 역할을 한 것이 선전부장관 괴벨스다. 그의 선전 선동은 교묘하여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나치즘은 독일국민의 사상이 되었고, 거기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들은 맹렬한 극우 나치이스트가 되었다.
사실 이와 같은 현상은 먼 외국의 일만도 아니다. 바로 이 한반도에서 매일 같이 벌어지는 역사이기도 하다. 북쪽에서는 3대에 걸쳐 세습되는 권력을 안정시키기 위해 지난 반세기 이상 문화투쟁을 벌여왔다. 주체사상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수령의 영도, 수령의 독재는 주체사상의 교육을 통해 자연스레 정당화되어 왔다.
북쪽 사람들은 그저 권력의 총칼 때문에 '최고 존엄'에 맹종하는 것이 아니다. 반세기 이상 권력을 받쳐주기 위해 이루어진 사상교육의 결과가 북한을 세계에서 가장 단단한 동토의 나라로 만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주체철학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철학이다. 철학이 인간을 세뇌할 때 어떤 극단적인 현상을 만들어 내는지 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한반도의 북쪽에서 일어나고 역사를 똑똑히 목격했다.
남쪽-대한민국, 요즘 종북이라는 말이 하도 성행해서 나도 좀 위축된다. '남쪽'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면 자칫 종북주의자로 매도되기에 십상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내가 여기에서 쓰는 '남쪽'이란 말은 문맥상 그리 쓴 것에 불과하다-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70년대 유신독재를 상기하자. 그 당시 독재를 정당화하는 방법의 하나는 모든 교육에서 '한국적 민주주의'를 이해시키는 것이었다.
유신독재 하에서는 그것을 한국적 민주주의라 표방하면서 서구의 민주주의와 다른 우리 나름의 민주주의라 설명했다. 남북한의 대결구조라는 특수한 상황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우리의 민주주의는 서구식이 될 수 없고, 강력한 대통령의 리더십에 의해 영도되는 정치질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분열과 무질서로 또 다른 국란을 맞이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많은 국민은 이러한 정치적 교육에 넘어갔고, 지금까지도 이 교육세대의 상당수는 우리나라의 보수층을 이루고 있다.
따지고 보면 요사이 일어나는 역사논쟁, 교과서 논쟁도 다를 바 없다. 정부가 나서 역사교과서의 내용에 관여하고, 우편향의 교과서를 지원하는 사태는 권력의 소프트 랜딩을 위한 전술이고, 우리 사회의 보수층을 결집하고자 하는 얄팍한 전술이다.
지금 이러한 논쟁이 역사교과서의 국정화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조용한 역사쿠데타, 한국판 문화혁명이다. 만일 이러한 현상이 현실화된다면 이 사회의 자유는 사라질 것이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 그것을 살려내기 위해 지난 40년간 수많은 사람이 피를 흘렸는데, 부지불식간에 그 자유는 땅속으로 사라져 갈 것이다.
어찌하면 이 안타까운 상황에서 우리가 해방될 수 있을까. 시민의 각성, 또 각성이 필요한 때이다.
"안녕, 리비아!" 아우구스투스의 최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