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앞두고 백화점에서 단기판매사원 아르바이트를 했다. 글쓴이가 일한 전통주 선물세트 매대 사진.
남기인
특히 고객이 올 때를 대비해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어깨부터 발끝까지 안 아픈 곳이 없다. 퇴근 무렵엔 종아리 알통이 터질 듯하며, 발바닥은 불이 난 것 같고 삭신이 다 쑤신다. 하루 동안 무거운 술병들을 들고 왔다갔다 하다보면, 헬스클럽에 다니는 남자들도 만들기 어렵다는 '승모근'까지 생긴다. 어깨에 돌덩이를 얹고 다니는 느낌이다. "어이구 어이구 나 죽네"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출근할 땐 20대 아가씨였지만, 퇴근할 땐 할머니가 되어버린 기분이랄까.
또 하나 힘든 점이 있다면, 백화점 판매의 현장은 치열한 경쟁의 장이라는 점이다. 전통주 3개 업체가 각각 경쟁하며, 또 전통주는 양주와 경쟁하며, 또 주류 품목은 홍삼이나 꿀 등 다른 품목과 경쟁한다. 식품 선물세트 매대에는 드센 판매사원 아줌마들이 많아서 더 살벌하다. 손님을 가로채서 싸움이라도 났다 싶으면 그야말로 난리가 난다.
이번에 내가 일하는 동안에도 '버섯 아줌마'들이 서로 큰 소리 내며 싸우는 걸 두 번이나 목격했지만, 다행히 주먹은 오가지 않았다. 작년 추석 시즌의 경우, 고추장 파는 아줌마 판매사원들끼리 정말 치고 받고 싸우다가 결국 한 아줌마의 이가 깨지면서 싸움이 끝났다고 한다.
영업이 끝난 뒤에도 경쟁은 끝나지 않는다. 하루 일이 끝나면, 백화점 각 지점에 흩어져 있는 판매사원들의 스마트폰 단체채팅방에서 업체 담당자에게 매출보고를 한다. 이게 은근 경쟁이며 굴욕이다. 나의 근무지는 서울 삼성역 근처의 백화점으로, 강남권이라 사람도 많고 매출도 나쁘지 않은 편이다. 그런데 어쩌다 수원이나 영등포 같은 곳에서 '대박'이 터지는 날이면 기분이 상한다. "어쭈? 저긴 오늘 좀 했는데? 내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저기보단 잘해야지" 하는 오기가 생긴다.
대충대충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한철 장사"어차피 진짜 직원도 아니고 단기 아르바이트일 뿐인데 뭘 그리 열심히 하냐"고 물어보는 친구들도 있다. 돈을 안 줄 것도 아닌데 적당히 시간 때우다 가면 될 것을, 항상 매출에 스트레스 받고 밥 먹는 시간까지 쪼개가며 일하는 내 모습에 좀 의아해하기도 한다. 나라고 왜 그러고 싶지 않겠나. 농땡이 치고 대충 하다 집에 가고 싶단 생각이 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바로 '한철 장사의 책임감'이 발목을 잡는다. 내가 파는 주류 브랜드는 설날과 추석, 딱 이렇게 두 시즌의 매출이 그 해 1년을 좌우한다고 한다. 명절 시즌 장사를 망치면 1년 장사를 쫄딱 망하게 될 수도 있다는 거다. 그러다보니 책임감이 막중하다. '아 내가 이번에 많이 못 팔면, 우리 과장님은 손가락 빨겠지? 두 살배기 아기를 굶길지도 몰라. 게다가 회사에는 얼마나 큰 손해겠어' 뭐 이런 생각이 들다보니 농땡이를 치고 싶단 마음은 저 멀리 사라져간다.
사실 작년 설에도 같은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발목을 크게 다친 적이 있다. 기다리는 고객을 위해 술이 든 상자를 들고 냅다 뛰다가 삐끗해서 발목 인대가 끊어져버렸다. 발이 풍선처럼 부풀어 시퍼레진 그 순간에도 나는 술병을 깨지 않고 무사히 지킨 것을 다행스러워 했다. 물론 그 뒤에 그 술값의 몇 십 배나 되는 치료비가 들었다. 깁스를 해서도 결근하지 않고 끝까지 출근해 일을 마쳤다. 내가 없으면 나를 대체할 인력도 없을 뿐더러, 그 한철 장사가 전체 회사 매출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