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체험 '-1'일째. 최후의 만찬 양념통닭.
최규화
"선배, 보트피플 같아요."
지난 17일 오후 우리 부서 '간식타임'. 설탕 잔뜩 묻은 단팥 도넛을 입에 우겨넣고 있는 나를 보고 동료가 한 말이다. 동료들과 함께 점심 도시락을 먹으면 맨 마지막에 도시락 뚜껑을 닫는 사람은 십중팔구 나다. 그렇게 음식 천천히 먹기로 유명한 내가 어째서 지금은 '난민'급 섭식속도를 자랑하게 됐을까.
15일부터 21일까지 일주일간, 채식 체험이란 걸 했다. 내게는 지병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과민성대장증후군. 새해 들면서 올해는 이 지긋지긋한 녀석과 이별해야 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장 내 유해균이 좋아한다는 동물성 지방을 확 줄이기 위해서 채식을 해볼까 잠깐 '생각만' 했다. 33년 동안 육식으로 가꿔온(?) 내 몸이 어떻게 반응할지 너무 두려워서 차마 실천하지는 못하고.
그러던 차에 새해를 맞아 '작심삼일 체험기'를 기획해보자는 말이 나왔다. 그러면서 내가 "예를 들어 나같이 고기 좋아하는 사람이 채식을 해본다든지" 하는 말을 했는데, 그 말은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그래 그럼 네가 일주일 채식 해보고 글 하나 쓰면 되겠네." 그렇게 '육식 인간'의 채식 체험은 시작됐다.
14일 저녁, 최후의 만찬과 함께 비장하게 '채식 전야'를 맞았다. 메뉴는 양념통닭. 앞으로 168시간 동안 소, 돼지, 닭, 오리, 양, 말, 꿩 등 '다리 달린 동물'의 고기는 먹지 못한다. 통닭을 먹는 내내 마음이 착잡했다. 그리고 머리로는 이 맛을 오래오래 기억하려고 애썼다. 한편으로는 그래도 달걀이나 생선은 먹을 수 있으니 별로 힘들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울함과 작은 희망, 서글픔과 비장함이 뒤섞인 밤이었다.
첫째 날 점심은 집에서 싸간 도시락으로 해결했다. 반찬은 어묵볶음과 콩자반, 무말랭이. 허전했다. 마치 이종범이 빠진 타이거즈를 보는 것처럼. 머릿속은 온통 '이제 고기를 못 먹는다'는 생각이 점령하고 있었다. 무엇을 해도 집중이 안 되고 마음은 공허했다.
둘째 날인 16일 점심, 드디어 사건이 터졌다. 그날은 도시락을 싸오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과 식당에서 밥을 사먹자니,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메뉴 선택이 자유롭지 못할 것 같아 그냥 혼자 먹기로 했다. 회사 건물 지하 푸드코트 메뉴판 앞에 서서, 나는 한 마리 길 잃은 양이 됐다. 저 많은 음식 가운데, 고기가 안 들어간 음식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감자만두 집어들고 깊은 시름 하는 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