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단축, 폭스바겐 '독일 볼프스부르크'의 경험

[기획] 한국지엠 밤샘근무 폐지, 노동자 삶과 지역에 미칠 영향은? (하·끝)

등록 2014.01.23 20:01수정 2014.01.23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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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바겐의 노동시간 단축은 경영위기가 왔을 때 노사 합의로 고용을 보장한 사례다. 한국지엠의 주간연속2교대제 시행과는 큰 차이가 있지만, 노동시간 단축으로 나타난 사회현상은 참고할 필요가 있다.

<시사인천>은 한국지엠 주간연속2교대제 시행을 앞두고 지난해 12월 민주당 홍영표 국회의원, 한국노동사회연구소와 공동으로 '주간연속2교대제 시행에 따른 문제점과 대책'에 대해 토론회를 개최하려 했으나, 지엠이 '쉐보레 유럽 철수'를 발표하면서 진행하지 못했다.

이번 '독일 볼프스부르크'의 사례는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의 연구 분석 자료를 토대로 작성했음을 밝혀둔다. - 기자 말

폭스바겐이 소재한 볼프스부르크는 니더작센주에 속하며, 독일 중북부에 있다. 하노버 동쪽 70km 지점의 미텔란트운하에 접한 동시에 철도와 아우토반(고속도로)이 지나는 중북부지역 교통의 요지다. 1938년 나치독일이 폭스바겐의 본사와 공장을 건설하면서 자동차산업이 시작됐다.

볼프스부르크의 인구는 2011년 기준 12만2000여 명 정도이며, 폭스바겐에 근무하는 사람은 5만4000여 명이다. 사실상 폭스바겐 도시인 셈이다. 폭스바겐의 교대제, 근무시간 변동에 따라 교통·상점·여가문화시설 등의 리듬이 변한다.

폭스바겐이 1993년 커다란 경영위기에 봉착했을 때 '폭스바겐 모델'이 등장했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일자리 나누기다. 1994년 당시 규정노동시간 주 36시간을 28.8시간으로 20% 단축하고 임금은 16%를 삭감하면서 약 3만 명의 해고를 막았다.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시간의 유연화를 불러왔다. 노동시간이 단축된 만큼, 노동자마다 출퇴근 시간이 달라진 것이다. 노동시간 형태는 자그마치 150개에 달했다.


한국지엠 한국지엠 부평공장 생산라인 작업 모습.
한국지엠한국지엠 부평공장 생산라인 작업 모습.시사인천 자료사진

여가생활 증대로 '구매력'이 인근도시로 이전

주야맞교대였을 때는 지역에서 학부모 모임이나 시민대학 등의 모임 그리고 교육서비스를 주간 조와 야간 조를 위해 각각 구성했다면, 이제는 아주 다양한 노동시간 형태를 고려해야했다. 즉, 여러 시간대에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강좌와 강습을 개설해 노동자들이 근무시간대에 맞게 골라 참가할 수 있게 배려했다.


사내 스포츠의 경우 노동시간이 다양해지자 구성원들이 동시에 만나기가 어려워져 팀 숫자가 줄어들었다. 예컨대 축구동호회 11명이 같은 시간에 모이기 어려워진 것이다. 근무형태 변경으로 단체 스포츠보다는 인라인스케이팅·산악자전거·헬스 등 개인 스포츠가 더 많은 인기를 끌었다.

유연화 된 노동시간은 교통량을 분배해 '러시아워'의 교통난을 완화했다. 반면에 개인 승용차를 이용하는 사람이 늘어났고, 이는 공공대중교통의 운행을 줄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공공대중교통은 개인화된 근무시간에 적합하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 노동시간 유연화가 본격화하면서 대중교통 정기승차권 소유자는 7000여 명에서 3000여 명으로 57%나 줄어들었다.

이와 함께, 독일에서 가장 높았던 볼프스부르크의 자동차 소유율은 1000명 당 660대로 더 높아졌다. 이러한 현상들은 개인적 지출이 늘어났음은 물론 환경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또한 여성과 가족에게도 문제를 만들었다. 많은 가정에서 차 한 대를 가지고 있어, 남편이 이를 이용하면 나머지 가족이 장을 보거나 유치원에 아이들을 데려다 주는 일 등 일상에서 불편을 겪게 됐기 때문이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여가시간이 늘면서 인근 도시(하노버·브라운슈바익 등) 방문이 늘었다. 결과적으로 볼프스부르크의 구매력을 인근 도시로 유출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산업도시인 볼프스부르크보다는 좀 더 문화적 욕구를 채울 수 있는 인근 도시로 찾아 나선 것이다.

그러자, 볼프스부르크 상인들은 영업시간을 조정했다. 도시 구매력이 인근 도시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영업시간 조정은 상인과 볼프스부르크시, 폭스바겐의 협력 속에서 이뤄졌다. 볼프스부르크시는 평일 오후 6시 30분~8시, 토요일은 오후 1~4시에 도심지에서 주차료를 받지 않았다.

직업교육과 건강교육 분야 '공부 수요' 증가

폭스바겐 모델이 도입된 후 가족들이 같이 아동도서관에 가는 경우가 늘었다. 전에는 주로 어머니와 함께 갔다면, 시행 후 많은 직장인들이 법률·세금·일자리 정보 등을 얻기 위해 도서관을 찾았다. 공장 휴가기간에는 평소 이용하지 않던 노동자들도 도서관을 많이 찾았다.

주목할 점은 시민대학의 참여율이 줄었다는 점이다. 여가시간 증대가 교육 참여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교육보다는 비디오 대여점의 매출액이 늘어났다. 예외적으로 직업교육과 건강교육 분야는 수요가 증가했다.

직업교육 참가자가 늘어난 것은 폭스바겐이 '코칭' 회사를 설립해 제공하는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 회사의 교육프로그램은 폭스바겐의 근무자뿐만 아니라 주민들에게도 열려있다.

전체적으로 증가된 여가시간은 수공업적 일과 스포츠 활동을 가장 크게 증가시켰다. 직업교육을 제외한 다른 분야의 교육에는 여가시간을 사용하는 사람이 적었다.

"부부행복 프로그램 절실, 지역네트워크 구성해야"

노동시간 형태 변화로 가족들이 다 같이 할 수 있는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졌다. 150개가 넘는 노동시간 형태는 교육과 사회적 참여, 개인 생활의 계획성을 떨어뜨렸다.

한국지엠은 폭스바겐처럼 노동시간 형태가 다양한 것은 아니다. 주야맞교대 시절에는 주간조가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야간조가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일했다. 이제 주간연속2교대제 도입으로 전반조가 오전 7시부터 오후 3시 40분까지, 후반조가 오후 3시 40분부터 익일 오전 1시 50분까지 일한다.

이 변화의 두드러진 특징은 전반조일 때 아침에 다른 식구보다 1시간 이상 먼저 일어나고, 2시간 이상 빨리 퇴근한다는 점이고, 후반조일 때 다른 식구가 모두 잠든 시간에 집에 들어온다는 점이다. 특히, 아이를 양육하는 맞벌이 부부라면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전반조일 때는 일찍 퇴근한 남편이 아이를 찾거나 돌볼 수 있지만, 후반조일 때는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폭스바겐만큼은 아니지만 한국지엠의 주간연속2교대제 실시는 지역사회의 생활리듬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보고서를 통해 "우리는 공간의 정치에만 익숙한데, 이제 시간의 정치가 필요하다, 유럽의 경우처럼 '교통모임' '양육모임' '창조적 여가활동을 위한 원탁회의' 등 문제 영역별 관계자들의 소통과 네트워크 구성이 필요하다"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한국지엠의 참여는 필수고, 더불어 인천시와 부평구의 지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 소장은 또 "볼프스부르크의 이혼율이 급증한 데서 볼 수 있듯이 노동시간 단축으로 가정 내 갈등이 높아질 위험성이 있다, 노동자들은 대부분 수동적 여가활동에 익숙하고 부부 간 소통도 원활하지 않다. 이는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따라서 주간연속2교대제 도입과 함께 '부부 소통·행복 프로그램'과 적극적 여가활동을 위한 정보와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진단했다.

한편, 한국지엠이 주간연속2교대제를 시행한 지 4주 차에 접어들었다. 한국지엠과 전국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는 현재 노동시간 형태 변화가 가져올 문제점과 과제를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한국지엠만의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다. 인천시와 부평구, 각종 교육기관과 문화예술단체의 협력을 모색하는 장을 마련하자는 목소리에 귀기울일 때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사인천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한국지엠 #폭스바겐 #주간연속2교대 #쉐보레 #볼프스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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