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교체 안내하는 KB국민카드 직원카드사 정보 유출사고로 인해 한 금융사 직원이 개인정보유출 피해자에게 카드교체 안내를 하고 있다. <자료사진>
이희훈
"저희를 못 믿는 게 가장 안타까워요. 고객 앞에서 카드를 잘랐는데, 못 믿겠대요. 잘라진 카드 조각을 파쇄기에 넣었는지 일일이 다 확인하는 거예요. 한 고객은 카드 조각을 보고서도 영수증을 달래요. 해지 영수증을."A씨는 고객 앞에서 카드를 자르고 나서도 다시 설명을 한다. 제대로 잘린 게 맞는지, 문제가 되지 않는지 확인을 요구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이제 안심하라고 설득하지만 어떤 고객은 영수증까지 달라고 한다. 없다고 하니 명함을 가져갔다. 진심을 다해 설명하지만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날은 고객에게 짜증을 냈다. 충분히 설명을 했는데도 자꾸 의심해서다. 힘들어서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아버님, 저 정말 힘들어요. 있는 그대로 다 말씀드린 거예요."큰 소리 치는 고객은 생각보다 적다. 다만 대기 시간이 길어지고 재발급이 늦어지는 데 대해 불만이다. 지점장은 번호표 받는 고객에게 대기 시간을 알려준다. 두세 시간 후에 오라고 말이다.
A씨의 카드도 털릴 만큼 털렸다. 하지만 재발급을 하지 않았다. 카드번호가 유출되지 않았기에 큰 걱정은 없다. 사고가 나려면 이미 그전에 터졌을 일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언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쁜 점들을 부각시켜 고객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고객님들의 불신, 이해하지만 창구 직원 말들을 충분히 듣고 받아들여줬으면 좋겠어요. 저희들이 그렇게 설명해도 한 가지만 보려고 해요. 사고가 났으니까 큰일 났다, 이것 밖에 안 보려해요. 언론 뉴스가 조장했어요. 언론이 미워요."3일째, 점점 아프기 시작한다. 하루 종일 키보드와 마우스를 두드리니 어깨가 결린다. 쉼 없이 말하다 보니 두통도 온다. 앉은 자세 때문에 갈비뼈도 아프다. 사내 메신저로 동료에게 "없던 다크 서클도 생기겠다"고 말했다.
이날 지점 번호표가 500번을 넘었다. 지점을 옮긴 지 1년 만에 가장 높았다. 직접 처리한 건수만 100건이 조금 안 된다. 거의 대부분이 카드 재발급이다. 이번주 주말에는 제발 근무하지 않기를 고대한다. 이날은 연장 영업도 했다. 연장 시간에는 카드 관련 업무만 받는다.
점심 시간은 30분이다. 밥 먹고 이 닦고 끝이다. 커피는 사치다. 나머지 휴식시간도 언감생심이다. 화장실은 '고객님' 눈치를 봐야 가능하다. 자리를 비우면 번호표만 보던 고객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린다. 대신 고객님을 앉혀 놓고 속삭인다.
"죄송합니다, 화장실 잠깐 다녀올게요. 3분만 기다려주세요."[서울시내 한 지점에서 근무 중인 B씨(남) : 입사 14년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