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숙미 인구보건복지협회장은 "무조건 낳으면 좋다는 강요가 아닌, 부부가 아이를 낳겠다는 마음이 생길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며 "일·가정 양립을 하는 가족친화적인 기업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이기태
- 인구보건복지협회 12대 회장으로 취임을 축하드린다. 얼마 전까지 국회 보건복지위원으로 활동하시다가 다시 현장으로 오셨다(손 회장은 18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앞으로 3년간 협회를 이끌게 됐는데 취임 소감 부탁드린다."국회에서 보건복지위원으로 보육이나 출산 쪽 법안도 많이 내고 관련 활동을 하다 보니 전문성을 인정받아 이 자리에 오게 된 것 같다. 그런데 때마침 출산율이 떨어지는 시기에 오게 돼 어깨가 무겁다. 아직 공식적으로 지난해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가임기간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나오지 않았는데 2012년 1.3이었던 합계출산율이 2013년에는 1.1 수준으로 내려갔다고 한다. 게다가 올해는 청말띠해인데 '청말띠 여자는 드세다'라는 속설 때문에 아기 낳기를 꺼리는 사람들이 있어 걱정된다. 이런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 어려운 상황일 때 새로운 회장으로 부임하시게 된 것은 '힘 있는 분이 좀 더 크게 힘을 써달라'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역사가 50년이 넘은 오래된 협회로, 초반엔 산아제한 정책에서 시작해 사회 흐름에 따라 이제는 출산장려로 콘셉트도 바뀌었다. 현재까지는 협회가 사업 위주로 많이 하고 있는데 정책개발도 하고 싶다. 국회 경험을 살려 정책이나 법안을 만들어 적극적으로 복지부나 국회의원들을 만나 설득하고 선제적으로 해보자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 인구협회 역할 중 대국민 인식개선이 가장 중요한 게 아닌가 싶다. 저출산 문제의 원인을 살펴보면 젊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있고, 그런 현상이 옅어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부분의 역할을 해주십사하는 요구가 있는 것 같다. 저출산 해결을 위한 인식개선을 어떻게 바꿔나갈지 궁금하다."인구협회의 역할은 주로 인식개선 사업이다. 아이 낳기 좋은 환경 만드는 사업을 주로 하고 있는데 복지부와 같이 하는 '아이 낳기 좋은 세상 운동본부' 사업도 많이 하고 있다. 저출산 해소에 관심 있는 시민단체들이 모여 적극적으로 결혼 앞둔 청년들을 대상으로 교육도 시키고, 지자체 사업 중에서는 맞선 보는 프로그램도 진행하는 등 다양하게 하고 있다.
처음 부임하고서는 인식개선을 한다고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결혼을 앞둔 청년을 대하다 보면 저출산으로 야기되는 문제들에 대해 실감을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출산율이 떨어지면 앞으로 국민연금 혜택도 줄어들 것이고, 경제적으로는 내수부진에 힘들어질 텐데 이런 부분에 대해 고민을 못하는 경우들이 많은 것 같다.
아기를 낳지 않는 건 자기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인 재앙이 된다. 그런 걸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 그런 위기의식도 불러일으키면서 결혼했을 때 가족의 소중함도 일깨워주고 결혼 후 삶에 대한 플래닝도 해주고 젊은이들이 결혼하고 싶다는 느낌이 들도록 교육사업을 많이 하고 있다."
"일-가정 양립할 수 있는 가족친화적 기업들 많이 나와야"
- 말씀하셨듯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 결혼 자체를 꺼리는 젊은이들이 많다. 그래서 '미혼'이라는 말 대신 '비혼'이라는 말이 쓰이고 한다. 젊은 층에서 아이 낳지 않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우리나라 결혼율은 다른 나라에 비해 그다지 낮지 않은데 출산율은 낮은 편이다. 출산율이 낮은 나라를 보면 홍콩·싱가포르·한국 등 동양권 국가들이다. 동양권 국가 중에서 갑자기 잘살게 된 나라들의 출산율이 상당히 떨어진다. 아무래도 갑자기 잘살게 되면서 성취에 대한 욕망이 커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주로 농사를 짓던 시절에는 자식을 낳으면 자식이 농사짓는 것도 도와주고 노동력을 제공해주고, 노후도 자식이 책임져 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반대로 자식을 계속해서 뒷바라지해야 하는 AS(애프터 서비스)의 대상이 돼버렸다. 자식을 키우는 게 자신의 자아실현을 방해하는 것 같은 요소라고 생각하게 되니 아이 낳기를 꺼릴 수밖에.
게다가 사교육비·보육비 등 아이 키우는 데 비용이 많이 들고, 직장도 출산친화적이거나 가족친화적이지 못하니 눈치를 봐야 한다. 자신의 경력이 손상되지 않길 바라고, 그러다 보니 자꾸 출산을 미루게 되고, 첫 출산이 늦어지니 둘째 출산도 늦어지고…. 이렇게 되는 것 같다."
- 저출산의 원인이 여러 분야에 걸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어, 한 가지 방안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아 보인다. 저출산 문제 극복을 위해 어떤 대책이 필요하고 어떤 점부터 보완해야 한다고 보시는지?"무조건 '낳으면 좋다'는 강요가 아닌, 부부가 아이를 낳겠다는 마음이 생길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 경기문제부터 실업문제도 있지만 그건 거시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부분이다. 아직 우리나라는 아기를 낳고 키우는 보육 인프라가 부족하다. 보육시설이 많은 것 같지만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보육 인프라가 더 많이 생겨야 한다.
또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가족친화적인 기업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출산휴가·육아휴직이 있어도 눈치가 보여 못 쓰는 경우도 많다. 여성들의 경우 '아기를 낳으면 직장을 그만둘지도 몰라'라는 생각을 많이 해서 안 낳는 경우도 많다. 직장 자체가 출산하는 데 걱정을 안 하도록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우선적으로 우리 협회부터 모델로 해서 출산친화적인 직장으로 만들어 보려고 한다. 저출산 해소를 우선하는 협회이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앞서나갈 필요가 있다. 우선 출산 후 아빠휴가를 한 달 정도 의무적으로 쓰도록 늘릴 계획이다. 현재 규정은 3~5일인데 국가가 정한 틀을 뛰어넘어 대폭 늘려보려고 한다."
- 박근혜 정부에서 '아빠의 달'을 중요하게 강조했고, 박 대통령이 직접 경력단절여성 해소를 최근 몇 차례 강조하시기도 했다. 협회에서도 이에 발맞춰서 일·가정 양립을 위한 일들을 추진하면, 정부와 단체가 서로의 위치에서 공조하는 모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재 국가 차원에서 '아빠의 달'을 도입하려고 하지만 잘 안 되고 있다. 협회 예산으로 선제적으로 한 번 해보려 한다. 인구협회 직원부터라도 안심하고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도록 배려해줘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내부적인 변화부터 이끌어 내겠다.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국가와 사회·기업 등이 적극 동참해 부부가 마음 편히 아이를 낳고 키우기 좋은 환경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게 중요하다."
"기업들, 출산문제에 적극적이어야... 미래의 고객 잃기 전에"
-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협회가 현재 진행 중인 사업과 올해 중점적으로 추진해 나갈 사업에 대해 몇 가지만 소개해달라. "인식개선 사업을 중점적으로 해야 할 것 같다. 아쉽게도 올해 '아이 낳기 좋은 세상 운동본부' 예산이 많이 삭감됐다. 인구의 날(7월 11일)이나 임산부의 날(10월 10일) 행사 중심으로 인구문제, 임신과 출산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높이려 한다.
또 생애주기별 대상자 특성에 맞는 대국민 홍보 교육을 실시해 결혼과 가족 출산친화적인 사회분위기를 조성할 방침이다. 지자체 협력사업으로 미혼남녀 미팅프로그램, 출산친화 동요제, 가족친화 패션쇼 등의 행사도 진행하고 출산친화 육아용품을 대여하는 출산지원사업도 전개할 계획이다.
이와 더불어 '아가사랑 사이트' '맘맘맘 카페' 등도 좀 더 활발히 운영해 임신·출산·육아 관련 올바른 정보를 꾸준히 제공하려고 한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어디서든 가족사랑 많이 느낄 수 있도록 국민인식개선을 위한 공익광고 등의 홍보사업을 많이 하려고 한다. 제가 직접 기업체나 관계기관도 방문하면서 기업과 사회의 인식을 바꿀 수 있도록 열심히 뛰어야 할 것 같다."
- 말씀하신 것처럼 저출산 해소를 위해서는 직장에서의 일·가정 양립이 밑바탕이 돼야 하기 때문에 직장의 변화가 정말 중요하고 필요한 것 같다."기업들이 출산의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이제 걸음마를 띄기 시작한 것 같다. 보육에 대한 예산이 큰 것 같지만 이제까지 투자를 별로 안 하다가 하니까 돈을 많이 쓰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 뿐 출산과 보육에 해당하는 예산은 이제 겨우 국내총생산(GDP)의 1%를 넘어섰다.
저출산 국가였던 프랑스도 출산율이 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프랑스는 임신에서 육아에 이르기까지 받을 수 있는 수당이 서른 가지 정도 된다. 가족 유지를 위한 각종 수당을 관리하는 '가족수당금고'가 따로 있을 정도로 가족에 대한 지원이 크다. 이런 수당 지원 정책으로 프랑스는 2012년 출산율 2.01명을 기록했다.
가족수당 재원은 직장에서 60%, 국가보조가 20%, 근로자가 20%를 구성한다. 기업이 근로자와 함께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전통이 자리하고 있다. 이 부분이 굉장히 부러워서 제가 국회에 있을 때 아동기금법안을 발의했는데, 기업의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통과가 안 돼 아쉽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미래세대가 줄어들면 고객도 줄어드는 거고, 직원이 될 수 있는 훌륭한 인재도 줄어든다. 미래의 직원과 고객에 투자해야 한다. 단순히 현재 시점에서 일·가정 양립을 위한 지원을 비용적인 측면으로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정부·기업·사회·개인 모두 힘을 합쳐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야 한다. 개인만 노력한다고 해서 될 것도 아니고, 정부가 모두 책임지기에는 부담이 크다."
- 선진국 가운데는 복지제도가 완성이 되고 정책이 뒷받침하는데도 출산율이 낮은 나라도 있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굉장히 복잡한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인구정책을 꾸려가는 게 쉽지 않은 것 같다. 협회만 해도 50년 역사가 시대에 따라 역할이 달라졌다."시대에 따라 역할을 재정립을 했다. 콘셉트를 완전히 바뀌어서 한 거다. 사실 아기를 안 낳게 하는 건 쉽다. 피임이나 정관수술을 하면 된다. 하지만 낳게 하는 건 어렵다. 너무나 많은 것들이 연관돼 있어 산아제한만큼 쉽진 않다.
또 인구협회가 정부직속기구가 아니라 모자보건법에 의해 설립된 민간단체다 보니 직접 정책을 개발하지 못해 수동적인 입장에서 하고 있다. 선제적으로 치고 나가는 부분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회장 직속으로 정책사업개발 태스크포스팀(TFT)을 만들려고 한다. 중점적으로 사업과 정책을 개발해서 복지부에 건의하고 복지부가 전국적인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형태로 갈 계획이다."
"가족복지 잘 돼 있는 스웨덴 사례 주목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