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제사상에 오르는 부침개들
조종안
'명절'이란 단어만 들어도 스트레스를 받을 만큼, 대한민국 사회에 명절스트레스는 만연해 있다. 나도 명절만 되는 그 스트레스를 받는 며느리 중 한 명이고... 사실 내 경우 음식 만드는 스트레스만 있었다면, 잘 참고 견딜 수 있었을 텐데, 고작 한 살 많은 시누가 번번이 스트레스를 줘 더 괴로웠다.
첫 명절을 삭신이 쑤시게 보내고 난 후 나는 생각했다. '나는 큰 집 며느리도 아닌데, 왜 거기 가서 손가락 지문이 닳도록 찬물로 설거지를 했을까. 나는 큰 집 맏며느리도 아닌데, 허리가 굽도록 앉아서 전 부치고 지금 엎드려 꼬리뼈를 만지고 있는 걸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문득 문득 들다가, 무언가 번개처럼 뇌리를 스쳤다. '근데 이 집 여자는 나뿐인가? 내가 손목에 파스까지 붙여가며 일할 때 아가씨는 뭐했지?' 어머님이 이거해라, 저거해라, 얘야, 쟤야 하는 통에 정신이 혼미해져 영혼 없이 음식을 하다가 집에 와서 영혼을 찾고 보니, 그제야 시누이 생각이 났다.
시간을 주섬주섬 주워 생각해보니 내가 동그랑땡을 꼭꼭 눌러 반죽하고 있을 때, 그녀는 소파 위에 다리를 꼬고 앉아 TV를 보았던 것 같고, 내가 모든 신경을 집중한 채 혹시 찢어질까봐 노심초사하며, 메밀전을 뒤집었을 때 그녀는 소파 위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잔 것 같고, 내가 이쑤시개에 채소와 고기 등을 색깔 맞춰 꽂을 때엔 낮에 먹은 게 소화가 안 된다며 저녁은 안 먹을 거니, 친구들과 영화를 보고 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명절음식을 많이 안 해본 나는 용하게도 메밀전을 한 장도 찢어먹지 않았고, 산적꼬치는 가지런히 잘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으며, 갈비찜은 뼈가 쏙 빠질 정도로 부드럽게 익었다. 어머님과 큰집어머님은 "음식 많이 해봤구나, 손끝이 야무지다"며 칭찬하셨지만, 하나도 반갑지 않았다. 칭찬은 안 해주셔도 좋으니, 시누이를 불러 함께 일 좀 하라고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절 아침, 아침식사 후 입이 심심하셨던 큰집아버님은 시누에게 과일을 깎아보라고 했다.
"엥? 제가요? 왜요? 새언니 있잖아요.""이런... 언니 어제오늘 바쁜 거 못 봤냐. 지금도 설거지 막하고 앉았구만! 얼른 사과 깎아 내와."하지만 시누는 큰아버지의 말에도 미동도 않은 채 TV 앞을 지켰다. 같이 앉아있던 내 얼굴이 불화산처럼 타오르는 것 같아 냉큼 일어나 주방에서 사과를 가져왔다. 묘한 긴장감이 불러온 무거운 공기가 가슴을 꾹꾹 눌렀고, 숨이 턱턱 막혔다. 나는 사과 한 쪽이 큰집아버님의 입에 들어가야 내 숨통이 트일 것 같아서 빠른 속도로 사과 돌려 깎기를 했다. 어쩔 줄 몰라 하며 사과를 깎고 있는 나를 보면서도 시누는 꿈쩍도 안 했고, 결국 큰집아버님은 시누에게 또 한소리를 하셨다.
"OO야, 너 언니처럼 음식 할 줄 알아? 사과 한 쪽이라도 깎을 수 있어?""결혼하면 다 해요.""결혼한다고 다 해? 지금부터 보고 배워야하지!""새언니도 결혼하고부터 하게 된 거예요. 맞죠? 새언니?"결코 내 귀에 좋게 들리지 않는 저런 말들은 아무렇지 않게 하는 시누가 미웠으나, 나는 '아닌데, 나는 두발로 걷기 시작할 때부터 쟁반을 들고 내 밥그릇을 날랐고 연필 쥐던 날부터 과도 들고 우리 부모님에게 과일 깎아드렸는데...'라는 말을 속으로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집안 행사 때마다... 시누이는 '부재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