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사 개인정보유출 사태가 발생한 가운데 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 국민은행 지점의 경우 평소 2배 넘는 고객들이 몰려 대기 시간이 2시간 가량 걸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권우성
신씨는 평소 이용하던 KB국민카드를 2주 전 다른 카드로 교체했다. 그런데 20일 오전 신씨의 휴대전화로 2주 전 사용하던 카드번호와 함께 '카드 거래가 시도됐으나 거래 승인은 되지 않았다'는 문자메시지가 왔다. 마침 지난 17일 카드사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는 소식을 접한 뒤였다. 신씨는 누군가 자신의 정보를 악용해 카드거래를 시도한 것 자체에 찜찜함과 불안감을 느꼈다. 곧장 KB국민은행 콜센터(1588-1688)로 수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상담원 연결이 어렵다'는 기계음만 되돌아왔다.
신씨는 답답한 마음에 직접 은행으로 달려왔다. 은행에서는 콜센터 전화번호 대신 국민은행 대표번호(1599-9999)를 알려줬다. 신씨가 그 번호로 통화를 시도하자 곧장 상담원과 연결됐다. 상담원은 "새로 발급받은 카드가 아닌 전에 쓴(취소된) 카드로 결제가 시도된 것인 데다 기본적인 정보만으로는 결과적으로 승인이 안 된다"고만 말했다.
그러나 신씨는 "만약 2주 전에 카드를 안 바꿨으면 결제됐을 가능성도 있는 것 아니냐"며 "어떤 경로로 내 정보가 유출됐는지 자세한 정황도 알 수 없고 이런 사태에 대해 사과 한 마디 없는 은행이 참 답답하다"며 분노했다. 결국 신씨는 "무작정 3시간을 기다릴 수는 없으니 다른 날 와서 카드를 해지하겠다"며 은행을 나섰다.
이날 오후 이 지점 대기인원은 오후 2시 25분경 최대 168명까지 기록했다. KB국민은행 측은 신규·일반창구부터 대출, 외환창구도 개인정보유출에 대한 업무를 보도록 했지만 창구 직원을 통해 업무를 본 고객은 10명에 불과할 정도로 일은 더디게 처리됐다.
객장 안에서는 "현재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이번에 유출된 정보는 범죄 목적에 사용되기 전에 모두 압수되었기 때문에 불법적인 예금 인출 등 피해는 없을 것으로 확인됩니다"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지만, 고객들은 발을 구르며 난감해 했다.
회사 업무 중 은행을 찾은 고재선씨는 "주말에 뉴스를 못 봐서 오늘 회사에 출근해서야 알았다"며 "잠시 짬을 내 유출된 정보를 확인하려 왔다"고 말했다. 고씨처럼 개인정보유출 사건 때문에 은행을 찾은 고객은 대기 인원의 절반을 넘는 수준이었다.
이아무개(45·남)씨는 유출 정보를 확인하고 카드를 재발급하기 위해 오후 2시 10분경 은행을 찾았으나 빈 손으로 은행을 나서야 했다. '대기시간이 2시간'이라는 직원의 말에 "좀 있다 다시 오겠다"면서도 "홈페이지 팝업창에만 안내 메시지를 띄우고 별도의 사과공지나 문자가 없는 게 말이 되냐"며 화를 누르지 못했다.
새 통장을 발급하기 위해 은행을 찾은 김순란(67, 여)씨도 개인정보유출 건으로 평소보다 더 오래 대기했다. 그는 "서민들은 은행을 믿고 목돈도 맡기는데 어찌 이렇게 허술할 수가 있냐"며 "자식한테도 주민번호나 개인정보는 주지 않는데 정작 은행과 금융감독원이 관리를 못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특히 "보이스피싱 등을 하는 사기꾼들을 나쁘다고 할 것이 아니라 빈틈을 보인 은행과 금융감독원이 1차적으로 잘못했다"고 지적했다.
김칠년 부지점장은 "오늘 은행을 찾은 고객 중 50% 이상이 카드사의 개인정보유출 건으로 온 사람들"이라며 "평소 업무 마감시간(4시)보다 더 늦어지더라도 번호표를 뽑은 고객에 한해서는 업무처리를 하겠다"고 밝혔다.
"머리만 숙이면 끝? 카드사가 보이스피싱보다 더 잘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