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
표창원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이석기 의원 내란 음모 혐의',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자 의혹'등 지난 2013년에 일어난 굵직한 사건들을 하나로 관통하는 것은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이었다.
대선 기간 중 국정원이 인터넷에서 여론조작을 조직적으로 벌였다는 의혹이 있었지만 대선을 사흘 앞두고 밤 11시에 느닷없이 '아무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경찰의 중간수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선거에서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어 이 사건은 국민들에게 잊혀져가는 듯했다.
하지만 <뉴스타파>는 국정원을 대선 개입 사건을 지속적으로 보도했고 지난 2013년 6월 검찰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하면서 불에 기름 부은 듯 부정선거에 대한 의혹은 확산됐다. 6월 말부터 각 지역마다 자발적으로 시민들이 모여 촛불집회를 열어 진상규명과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2008년 광우병 촛불 집회로 한 번 덴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는 정권의 정통성 시비로 옮겨가지 않도록 여러 사건을 터뜨려 국면 전환을 시도했다. 결국, 검찰의 수사를 방해하려 채 전 총장을 찍어냈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하지만 여러 물타기에도 촛불은 꺼지지 않았고, 급기야 지난해 11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박 대통령 사퇴 촉구 미사를 기점으로 개신교와 불교 등 종교계의 사퇴 요구로 번졌다. 12월에는 19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선출된 민주당 장하나 의원이 대선 불복과 박 대통령 사퇴를 주장하는 상황까지 이어졌다.
국정원 대선 개입을 강하게 비판하며 경찰대 교수직을 내던진 표창원 전 교수는 일련의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해, 지난 17일 서울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에서 표 전 교수를 만나 국정원 대선 대입 사건과 현재 정치 상황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다음은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와 나눈 일문 일답이다.
"권은희·윤석열, 시민들 마음속에 진정한 영웅으로 기억될 것" - 대한민국의 시계는 2012년 12월 19일에서 멈춰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자 논란' 등 굵직한 사안을 하나로 관통하는 것은 국정원의 대선개입입니다. 지난 1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지난 1년간 많은 일이 있었지만 국정원의 선거 개입 사건은 초기보다 훨씬 더 커졌고, 군 사이버사령부의 개입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그 과정에서 채동욱 전 검찰총장을 포함해 진실을 밝히려는 검사들이 불이익을 당하고 소위 '찍혀 나갔죠'. 징계나 좌천을 당하는 일도 있었잖아요.
그래서 겉으로 보면 시원하게 밝혀지거나 해결된 것이 없이 대선 이후 아무런 진전이 없어 보여서 1년이 허비된 것 아닌가 볼 수 있는 시기였죠. 하지만 그 안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 즉 촛불시민, 권은희 수사과장과 윤석열 검사, 여러 국회의원 등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런 노력들이) 올해 결실을 보지 않을까 생각해서 상당히 의미 있는 1년이었다고 봅니다."
- 권은희 과장의 승진 탈락과 윤석열 여주지청장 징계 등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수사팀의 좌천이 논란이 되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결국 권 과장이나 윤 검사가 승진에 누락된다든지 외압 의혹을 제기했다가 중징계를 당하고 좌천된다든지 불이익을 받았죠. 겉으로 봐서는 옳은 소리를 하고 정의를 주장해서 불이익을 받았으니, '저 봐라, 결국은 강한 자, 권력에 굴종하고 세상 흐름에 따라가는 것이 사는 길이지 괜히 깨끗한 척, 올바른 척하다가는 불이익 당한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사회에 줄 수 있죠.
하지만 길게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지금 당장은 이 분들이 불이익을 당하지만 많은 시민들의 마음 속에 이 분들은 진정한 영웅으로 기억될 겁니다. 그런 시민이나 역사의 평가가 훨씬 더 중요한 보상이 되지 지금 권력의 총애를 받고 좋은 자리 얻어 승진하는 것이 길게 봐서 이익을 주진 않는다고 봐요. 아마 지금 많은 청소년들이나 젊은이들도 눈 앞의 이익만을 보고 판단하진 않을 것 같고, 긴 역사의 평가 속에 이분들이 좋은 평가를 받고 이분들 스스로도 후회하지 않고 잘했다는 만족감을 얻으리라고 봅니다."
- 국회는 지난해 12월부터 국정원 개혁 특위를 구성해 국정원 개혁 방안을 마련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국정원 개혁 특위에 대해 기대를 해도 될까요?"국정원 개혁 특위가 구성된 것 자체가 의미는 있죠. 그러나 국정원 국정조사 때도 새누리당 의원들의 방해 내지는 피의자들의 변호인, 방패막이, 혹은 공범 역할을 해서 많은 국민들이 짜증을 느꼈고 무용론까지 대두가 될 정도였습니다. 이번 개혁 특위 역시 새누리당에서는 국정원의 권한을 더 강화하자는 것으로, 전혀 말도 안 되고 엉뚱한 입장을 가지고 와서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획기적으로 문제가 해소될 수 있는 개혁안은 기대하기 어렵겠지만 그 결과가 지금보단 낫지 않을까? 조금이라도 국정원의 부당한 권력 작용을 견제할 수 있는 개혁 방안이 마련되는 것은 기대할 만하다고 봅니다."
- 특위에서 논란이 되는 것 중 하나가 핸드폰 도감청 허용인데, 어떻게 보세요?"같은 이야기죠, 새누리당 주장인데 취지에도 안 맞고 전 세계 정보인권 보호에도 역행하고,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이에요. 그러나 새누리당에서 그런 주장을 하는 이유는 실제 도감청을 가능하게 하겠다는 것보다는 그런 무리한 요구를 함으로써 국정원 개혁 요구들을 누그러뜨리고 성과를 반감시키겠다는 물타기 전략이 아닌가 생각해요."
"박근혜 대통령, 반쪽짜리 대통령으로 국민과 싸우려 들어"- 시민사회에 이어 종교계까지 나서서 박근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민주당에서는 '어차피 임기 5분의 1이 지났으니 지금 사퇴하는 것은 혼란만 준다'고 했어요. 표 교수께서는 민주당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주장과 시민사회의 '대통령 사퇴' 요구 중 어느 것이 맞다고 생각하십니까?"정답이 있다고 보진 않습니다. 시민사회나 종교계에게 퇴진을 요구하는 것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죠. 그리고 바로 이런 요구가 나온 것이 아니라 1년 가까이 되는 기간 동안 많은 요구가 있었고, 진실규명 과정에서 불공정 시비라든지 문제들이 심각했음에도 불구하고 털고 가려는 시도조차도 전혀 없었잖아요. 그러니까 이제는 도저히 안 되겠다, 답이 어디 있겠느냐, 자격 없어서 사퇴하라는 건 시민들이 얼마든지 요구할 수 있는 거죠.
민주당 쪽에서는 민주당 스스로가 공당으로서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민주당도 두 번이나 집권했던 정당으로서 책임이란 부분을 느끼고 있겠죠. 그래서 시민들처럼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말을 정당의 공식적인 의사로 표명하는 게 쉽진 않을 거예요. 이건 충분히 이해를 합니다. 다만 많은 시민들이 민주당에 실망하고 있는 것은 정권 퇴진 요구 여부의 문제보다도 그동안 민주당이 보였던 미적지근한 태도예요.
처음에 요구를 내걸고 이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용납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몇 번 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요구를 전혀 들어주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다시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정부나 여당이 얘기하자면 얘기하고, 국회일정 재개하자면 재개하고, 오직 여론조사에 나오는 지지율만 보고 투쟁 일변도로 나가다가 지지율 떨어지겠다고 판단하면 다시 민생이나 국회일정에 들어가고... 너무 미온적이라면 또 투쟁하는 모습 보이고, 오락가락 줏대 없는 모습 때문에 민주당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고 실망이 표시되는 거죠. 꼭 퇴진을 요구하느냐 않느냐의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 그럼 안철수 의원의 태도는 어떻게 보세요?"안 의원 역시 마찬가지죠. 아직까지 기반이 구축되지 않고 정당도 없어서 쉽게 모험을 할 수 없는 사정은 이해해요. 그러나 안 의원도 결국 지난 대선에 국정원과 사이버사령부에서 행한 말도 안 되는 여론조작 희생자고 피해자잖아요. 말도 안 되는 허위사실이 유포되고 모욕적이고 명예훼손적인 피해 당사자인데 피해 당사자가 너무 조용하다는 거죠.
직접 당사자가 아닐 수도 있는 국민들이 더 분노해서 진실규명을 요구하고 자기 생업에도 피해를 받으면서 촛불시위 하러 나오는 상황이에요. 그런데 정치적 지도자를 생각하는 안 의원이 이 문제는 언급도 안 하면서 민주당과 새누리당 간의 다툼 혹은 정쟁으로 규정하는 듯한 모습이 보여요. '니들은 왜 만날 싸우기만 하냐? 나는 싸우지 않는 새정치를 하겠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정쟁적 분위기에서 이익을 취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죠.
안 의원의 행보를 좋아하는 분들이야 그게 낫다고 하시겠지만, 지난 대선에서 벌어졌던 불법 행위에 대한 진실과 정의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봤을 때 안 의원에게 너무 실망도 많고 안타깝고 심지어는 분노까지 표출하는 상황이 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