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를 공포한 2012년 1월 26일 오후 학생인권조례를 발의한 시민단체 활동가와 자문위원, 교육청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시교육청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권우성
그런 내가 변하게 된 건 학생인권조례를 만나고 부터였다. 학교에서 아무도 말하지 않던 '인권'을 알려준 것은 학생인권조례 뿐이었다. 우리 학교에서 일어나는 종교 강요 등의 인권침해는 거의 모두 학생인권조례에서 금지된 것들이었다. 선택해서 온 특성화고등학교라고 할지라도, 종교 교육에 있어 기본적인 선택권을 보장하도록 하는 학생인권조례는 내가 틀리지 않았다고 얘기해주는 것만 같았다. 그런 학생인권조례 덕분에 답답한 학교를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고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을 행동에 옮겨서, 학교에서 일어나는 종교 강요를 중단하고 학생인권조례를 준수하라는 대자보를 써서 교문과 복도에 붙였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대자보를 바로 떼어버리고 무시했다. 오히려 '대자보를 붙인 학생은 다른 학생들을 선동시킨다'며 '퇴학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협박했다. 대자보가 떼어지고 난 뒤, 좀 더 적극적인 문제제기 방식이 필요해보였다. 그래서 등굣길에 학교 앞에서 일인시위를 시작했다.
시위를 시작한 날부터 학교는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다른 학생들을 선동한다'며 일인시위를 그만 두라고 설득했다. 학교에 피켓을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게 했고, 내가 속한 반만 등교시간을 앞당기게 해 일인시위를 방해했다. 매일 생활지도부장 선생님, 담임선생님, 교장선생님과 면담을 하며 온갖 탄압 속에 학교를 다녀야했다.
나의 일인시위 소식을 접한 시민사회단체들은 학교측에 종교 강요·표현의 자유 탄압에 대한 사실을 묻고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라는 의견서를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종교수업을 선택제로 운영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우리 학교에서 일어난 이 변화는 학생인권조례가 있었기에 가능한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조례가 있었기에 난 용기를 내서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다. 일인시위를 중단하라는 학교의 압박 속에서도 내가 하는 행동이 정당하다는 믿음을 잃지 않았던 건 의사표현의 자유가 명시된 학생인권조례 때문이었다.
너덜너덜한 학생인권조례 개정안지난해 발표된 전국학생인권·생활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생인권조례 시행지역이 미시행지역보다 체벌 빈도가 낮았다. 우리학교에서 일어난 변화와 실태조사 결과만을 보더라도, 학생인권조례는 학생들의 생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렇지만 학교 현장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대로 시행되기엔 아직 가야할 길이 멀어 보인다. 학내에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붙인 중고등학생들이 징계를 받는 일이 생기고, 대부분의 학교에 두발규제가 남아있고 거의 모든 종교사립학교에선 종교수업, 종교행사가 강제적으로 이루어진다. 일부 사립학교 교사들은 아직까지도 학생들에게 '사립학교는 학생인권조례와 상관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가 서울에서 시행된 지 이제 곧 2년을 맞지만 한 번도 제대로 시행된 적이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생인권조례가 잘 지켜지기도 모자란 이 마당에 서울시교육청 문용린 교육감은 지난해 12월 30일 서울학생인권조례 개정안을 내놓았다. 두발복장규제와 소지품 검사를 허가하고 성소수자 차별금지 조항마저 빼버린 너덜너덜한 학생인권조례 개정안은 '고쳐 바르게 한다'는 의미의 개정(改正)이라는 단어를 차마 쓸 수 없을 것만 같다. 개악(改惡)외에 적절한 단어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문용린 교육감은 그간 여러 번 학생인권조례로 무너진 교권을 강화하겠다는 발언을 해왔다. 정말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교권이 무너졌다면, 학생들에게서 두발 선택권을 빼앗고 성적순으로 차별하는 것이 교권을 다시 세우는 최선의 방법인지 문용린 교육감에게 되묻고 싶다. 학생인권조례를 개악한다면 학생들의 인권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후퇴할 것이라고 본다. 두발규제, 소지품 검사가 다시 생겨난 학교는 더 인권의 사각지대가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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