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그녀 마루멀리서 바라보는 것만 허락하는 마루다. 그녀가 집안으로 들어갈까봐 나는 조심스레 사진을 찍어야 했다.
김윤희
처음에는 덩치가 큰 그녀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주인장의 집을 살펴보느라 그녀를 쳐다볼 여유도 없었고 작고 앙증맞았으면 하는 기대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그녀와 자주 얼굴을 대면하게 되다 보니 정이 가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먼저 다가갔어요. 그러나 그녀는 저를 외면했어요. 저에게 다가오지도 않고 자기 집으로 들어가버리는 겁니다. 고개를 조금 내밀다가도 제가 거기 서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나오려던 발걸음을 되돌렸어요. 외출을 했다가도 그녀가 혼자 있을 것을 생각해 빨리 집으로 들어가곤 했는데도 말이지요. 먹고 싶은 과자를 먹다가도, 좋아하는 음식을 먹다가도 그녀가 생각나면 작은 봉지 속에 담아오곤 했지요. 하지만 그녀의 행동에는 변화가 없었어요.
제 생에 이런 외면은 처음입니다. 제가 의외로 동물들에게 인기가 많거든요. 어떨 때는 '왜 나를 이렇게 좋아하지? 내가 전생에 얘네들과 같은 종종이었든가?'라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니까요.
제 유일한 친구 그녀, 하지만 절 보지 않아요제게는 자주 만나던 두 명의 친구가 있었어요. 저희 셋은 강둑을 거닐고 있었어요. 길을 가다 맞은편에서 닥스훈트와 함께 산책을 하는 여성을 보게 됐어요. 제 옆에 있던 지선이라는 친구가 닥스훈트에게 다가가더라고요. 그 친구는 원래 동물을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개는 으르렁거리며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고 짖어대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친구는 거리를 두고 바라봐야만 봐야 했지요.
저는 개주인 눈치도 보이고 제게도 짖을 것 같아 1미터 거리에서 '쫑쫑' 소리를 내며 그 개를 불렀어요. 놀랍게도 녀석이 제게 다가오는 거 아니겠어요?
이 상황을 지켜보던 또 한 명의 친구도 닥스훈트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죠. 녀석은 정말 우리를 웃겼어요. 제 앞에서 몸도 비비고 손을 핥아대던 녀석이 친구가 다가오자 몸을 틀어 주인에게 가버리는 겁니다. '너에게는 관심 없어'라고 하듯 시선도 주지 않고 총총 걸어갔어요. 저희 셋은 웃었고, 친구들은 제 전생이 개라고 말했죠.
이 정도면 개들이 저를 좋아하는 거 아닌가요? 이런 일들이 자주 벌어졌어요. 자신을 길러주던 주인이 섭섭하게 느낄 정도로 제 곁에 붙어 애교를 부리느라 정신이 없던 녀석들이 정말 많았다니까요. 이런 제가 그녀에게 외면을 당했으니 얼마나 속상했겠어요.
저는 이대로 있을 수 없었어요. 이 집에 주인장을 빼면 그녀가 제 유일한 친구입니다. 겨울이 되면 시골 어르신들 대부분이 도시에 있는 자녀들의 집으로 떠나십니다. 그러니 주인장이 없을 때 저와 그녀는 서로를 위로해주는 사이가 돼야죠. 사실 그녀는 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친구입니다.
'너를 유혹하고 말겠어. 너는 이제 나의 포로가 될 거야.'그녀를 유혹하기 위해서 저는 '파블로프의 개'를 이용한 실험으로 종과 먹이에 관한 실험을 떠올렸지요. 먹이를 줄 때 종을 울렸더니 나중에는 먹이를 주지 않고 종만 울려도 개가 침을 흘린다는 요지의 실험이지요.
제가 그녀를 이런 실험대상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나를 반갑게 맞아주고 그녀의 등을 쓰다듬어도 도망가지 않도록 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녀는 먹는 것에 매우 약한 존재였죠. 그래서 식탐을 이용하기로 했어요. 저는 매일 그녀의 이름을 불렀지요. 아, 그녀의 이름은 '마루'입니다.
"안녕? 안녕? 먹자~ 먹자~"... 열심히 노력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