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예산안 및 국정원 개혁 관련 법안 등을 처리하기 위해 1일 새벽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가 민주당 김한길 대표, 전병헌 원내대표에게 다가가 인사하고 있다.
남소연
올해 5월 30일부터 시행되는 개정 국회법에 따르면 "예결특위는 '예산안 및 세입예산안 부수 법률안'의 심사를 매년 11월 30일까지 마쳐야 하고, 그 기한 내에 마치지 못할 경우에는 그 다음 날에 위원회 심사를 마치고 본회의에 부의된 것으로 본다(다만, 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합의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함)'(제85조의3). 예산안을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은 못하지만, 법정 기한내에 예산심의를 못하면 자동상정하게 된다. 또 '예산안등에 대한 무제한토론은 12월 1일 자정에 종료한다'(제106조의2제10항)고 명시돼 있다.
그러니 올해부터는 '예산 정쟁'도, 예산안 처리에 해를 넘기는 일도 없어진다. 이는 야당이 '예산 정치'를 할 공간도 사라짐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국회 선진화법이 효력을 발휘하기 전인 지난해 마지막으로 국회를 통과한 올해 예산은 '최재천표 예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숫자로 표기된 정치'를 할 수 있는 국회 예결특위 민주당 간사인 최재천 의원(재선, 서울 성동갑)의 국가재정에 대한 철학과 소신이 투영돼 있기 때문이다.
각 상임위별 예산심의를 거쳐 예결특위 예산안등조정소위원회(예결소위)의 예산안 심사가 시작된 것은 지난 12월 10일부터다. 예결소위 심사는 삭감사업부터 진행되는데 이후 15개 부처에 대한 삭감 1회독을 마친 15일까지 107개 사업 총 5707억원(총지출 기준) 삭감을 확정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박근혜정부 주거공약인 '행복주택' 예산인데, 2014년 예산 9,530억원 중 5,236억원을 대폭 삭감해 이를 국민임대, 공공임대 주택예산으로 전환했다.
한편 국민대통합위원회 같은 대통령 자문위원회 운영사업과 새마을 운동 관련 사업 등 대통령 눈치를 보느라 새누리당이 삭감을 반대한 34개 사업은 삭감이 보류되었다. 이때부터가 야당의 증액사업에 대한 '거래'가 시작되었다. 민주당은 핵심 증액예산으로 ▲무상보육 국고보조율 인상 ▲초중학교 무상급식 예산 지원 ▲학교 비정규직 지원 ▲학교 전기요금 지원 ▲쌀 목표가격 인상 등 다섯 가지를 주장했다.
편향적 안보교육과 불법 대선개입 책임을 물어 '징벌적 예산삭감'의 대상이 된 일부 부처와 새누리당의 반발 등으로 정회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예결소위는 12월 10일 제1차 소위원회를 개의한 이래 모두 열두 차례의 소위원회 심사와 간사 회의를 거친 끝에 2014년도 예산안 수정안을 마련해 31일 제11차 소위원회에서 이를 의결했다. 2014년도 정부 총지출 357조7000억원 중에 5조4046억원을 감액하고 3조5240억원을 증액해서 1조8805억원을 순삭감한 것이었다.
원자력 홍보예산은 묶고 촛불단체 '족쇄'는 풀었다민주당이 관철한 증액분 3조5240억원은 정부가 지난해 10월에 국회에 넘긴 총지출 357조7000억원의 1%도 안되는 수준이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은 야당몫인 이 1%를 관철시키기 위해 정부여당과 끊임없이 싸우거나 사정하고 조율하면서 '밀당'을 하고 때로는 '연계 처리'를 해온 것이다. 증액은 전적으로 정부의 권한이기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정부가 동의해야 꿸 수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예산 감액분 5조4046억원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3대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민대통합위원회, 청년위원회, 문화융성위원회의 예산과 대통령 사업에 대한 정권 홍보성 예산을 대폭 삭감한 것이다. 민주당은 국민대통합위원회 1억5500만원, 청년위원회 4억5000만원, 문화융성위원회 2억2000만원 등 총 8억2천500만원을 삭감했다. 또 대통령 핵심사업에 대한 정권 홍보성 예산 40억원을 일괄 삭감했다. 대선 기간과 인수위 때만 '반짝'하고 제역할을 하지 못하는 형식적 위원회와 대통령 사업에 과감하게 칼을 들이댄 것이다.
시민단체와의 공조 플레이로 원자력 예산이 삭감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원전 해외수출 기반 구축사업 예산 4억원을 삭감했으며 무엇보다도 원자력 홍보예산 10억원을 최초로 삭감했다. 원자력 홍보예산 삭감은 지금껏 원전 반대 활동가들의 '역사적 숙원'이었다. 원자력문화재단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도 이 홍보예산을 토대로 원자력이 깨끗하고 싸고 질좋은 에너지라고 끊임없이 홍보하고, 사람들을 기만해왔다. 온갖 로비가 쏟아졌지만 최재천 의원은 직접 자신의 이름을 걸고 삭감안을 내 끝까지 관철시켰다.
국회는 통상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을 심의·의결하면서 이러이러한 것을 이행할 것을 촉구하는 이른바 '부대의견'을 단다. 이번에도 2013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을 수정의결 하면서 '지하경제 양성화 사후검증'을 비롯한 49건의 부대의견을 달았다. 부대의견은 더러 예산 집행을 제약하는 족쇄로 작용한다. 2008년 촛불집회로 홍역을 치른 정부여당이 2009년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분풀이'성으로 붙인 이른바 '촛불단체 부대의견'이 그런 사례다. 국회는 불법시위에 적극 참여한 단체와 그 구성원이 처벌받은 단체에 대해서는 정부보조금을 지급하지 말라는 부대의견을 붙였고, 기획재정부는 '예산 및 기금 운용계획안 집행지침'에 이런 단체들에 대해서는 국고보조금을 받을 수 없도록 명시함으로써 민주시민 단체들도 정부보조금을 받을 수 없는 족쇄가 돼버린 것이다.
지난 2009~2013년 동안 이 족쇄 때문에 민주시민단체들은 헌법이 정한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행사했음에도 불법시위가 된 촛불집회에 참석하거나 이름을 올렸다는 이유만으로도 보조금을 한푼도 못받은 어처구니없는 피해를 입어야 했다. 국정감사 때부터 이 문제를 제기한 도종환 의원이 관련 자료를 예결특위에 넘겼고, 최재천 의원이 기재부와 협상하면서 예산심의 종료 이틀 전에 정치적 결단을 촉구해 '촛불단체 부대의견'의 족쇄를 5년만에 풀었다. 기재부가 예산 집행지침에서 보조금 지원 제한항목을 수정해 족쇄를 철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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