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바닥’으로 함축되는 밥의 서사시

최광임의 두 번째 시집 ‘도요새 요리’

등록 2014.01.14 09:01수정 2014.01.1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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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임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도요새 요리>
최광임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도요새 요리> 심규상
최광임 시인이 '밥을 구하기 위해 세상을 떠돌았다/ 연두에 초록을 채우는 일이었다'라는 자서로 시작하는 두 번째 시집을 출간했다. 첫 시집 '내 몸에 바다를 들이고' 이후 10년 만의 일이다. 최 시인은 시 전문 계간지 <시와 경계> 부주간과 <디카시> 주간을 맡고 있다.

시집은 '욕망의 아이러니와 비극의 유희'를 통해 '인생의 진실 탐구'를 주제로 삼으면서도 '세상의 모든 사물을 교묘한 레시피로 주무른 맛난 요리시집'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턱을 치켜세운 식욕 왕성한 새끼들에게/ 공갈빵이나 뜯어 먹게 하는 무색한 시절을 두고/ 부엌으로 달려가 양푼에 밥을 비빈다/ 어떻게든 허방으로 떠밀리지 않기 위하여/ 뙤약볕 같은 고추장비빔밥을 쑤셔 넣어 보신 적 있는가/ 막무가내로 뒤집어지는 매운 밥의 본능이/ 한 세월로 건너가는 새가 되는 것일 뿐,/ 천둥벌거숭이 나는 이 새벽 가슴 골짜기에서 솟구치는/ 눈물의 거룩한 밥을 짓고 국을 끓일 것이니" <눈물의 배후>부분

"도시의 한 편 허기진 아이들/ 어미의 초인종 소리 기다리며/ 채워지지 않는 밥그릇 긁고 있을 터였다" <속력의 밥>부분

어떠한 예술가도 당대 삶의 형식을 떠나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그렇게 보았을 때, 최광임 시인의 시들에 운집해 있는 '밥'과 '음식'에 관한 시는 시인의 현실적 삶과 밀접한 개연성이 있을 터이다. 이는 가장인 그가 10년 째 전문 시간 강의만을 해왔다는 이력만으로도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실제로 그의 시 "일을 마치고 막 기차 타는 밤이면/ 피가 돌지 않는 다리 주무르다 새벽을 맞기도 한다" <발바닥이 따스하다> 부분과 "먼동 트기 전 세상 한복판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는/ 내 발굽에 편자나 박아주시라"<눈물의 배후> 부분 등을 보면 자신 앞에 주어진 삶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자세에 견고한 비장미가 인다. 시의 본질인 셈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시인은 "언제 이 사막을 건널 것인가/ 연유를 묻지 않아도 여기, 지금, 이곳/ 응, 나야 하고 말 걸어볼 사람 하나 없는 건기의 도시/ 때때로 절박해지는 순간이 있다"<달팽이 간다>처럼 불확정적인 생에 대한 허무에 이르고 만다.


발문을 쓴 최금진 시인은 "'발바닥'으로 함축되는 삶의 고단한 여정은 동시에 삶으로의 귀속을 꿈꾸는 욕망과 한 쌍을 이룬다.…고통스런 삶에서 오래 숙련된 자의 목울대에서 흘러나오는 노랫가락처럼 희와 비가, 분노와 사랑이 한 몸으로 결합된 시의 형식은 누구나 쉽게 터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자서에서도 말했듯이 "뜨거운 세상을 얼마나 걷고 또 걸었는지"(발바닥이 따스하다) "나와 나의 시는 고고苦孤하여/ 많은 밤 노래하며 춤을 추"었다고 말한다. 노마드의 10년 여의 세월이 이 시집 한 권에 담긴 것이다.


 최광임 시인
최광임 시인심규상
그런 만큼 그의 이번 시집은 탄탄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이다. 이정록 시인은 "시가 일정 수준 고르며 언어도 잘 갖고 놀았다"고 평했으며, 최종천 시인 또한 "언어도 선명하고 사유와 감성이 적절하게 균형을 취하며 표현도 좋다"고 이번 시집을 평했다.

한편 이번 '도요새 요리'는 2011년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 1000만 원 수혜로 출간한 시집이다.

도요새 요리

최광임 지음,
북인, 2013


#최광임 #시집 출간 #도요새 요리 #시와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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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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