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경남 진주시 '차 없는 거리'에서 열린 대자보 문화제.
진주같이
한 대학생이 쓴 대자보 2장이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어떤 이는 운동권스럽지 않은 표현 때문에 큰 공감을 얻어 내었다고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대학생들의 정치 참여의 새로운 시도라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그 반대편에선 선동에 휘둘린 군중심리라는 식상한 비판도 곁들여 진다.
십 수년 전만 하더라도 대학생은 군부독재에 항거하고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내걸어 싸웠던 우리 시대의 투사로서 각인되어 왔고 항상 불의에 맞서 정의를 외치는 순수성을 가진 사회 변화 운동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IMF시대를 지나오며 우리의 대학은 철저히 상업화되었고 취업 양성소로 전락하기에 이르렀다. 대학생들은 스펙 전쟁의 투사가 되었고 토익과 학점에 목숨을 걸며 취업만이 유일무이한 꿈이자 목표가 된지 오래다. 더구나 엄청난 등록금은 학생들을 아르바이트로 내 몰고 딴 생각할 틈을 주지도 않는다. 그런 20대들을 정치사회 문제에 무관심하고 우리사회의 부정과 부조리에 순응한다고 비판하기엔 그들에게 놓인 현실이 가혹하기만 하다.
그런데 그런 20대가 아무리 안녕한 척 애쓰려 해도 안 된다며, 또 나만 안녕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청춘들을 향해 세상을 향해 안녕들 하냐고 물음을 던진 것이다. 우리 현대사는 안녕을 지키려는 기득권 권력과 그것으로 안녕치 못한 사람들의 싸움이었다.
안녕한 사람들이 있다.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나라가 망하고 회사가 망해도 안녕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우리사회를 구석구석 장악하고 있는 기득권집단이다. 그것이 돈이 되었던 권력이 되었던 크든 작든 간에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변화가 필요치 않다. 변화를 두려워한다. 그래서 돈과 권력을 동원해 그들이 안녕한 체제를 영원히 유지하고자 안간힘을 쓴다.
안녕한 척하는 사람들이 있다. 열심히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거나, 힘과 권력에 최선을 다해 보조를 맞추면 그들의 리그에 포함 될 수 있다는 목표를 가진 사람들, 또 언젠가는 그렇게 될 거라는 믿음을 가진 이들이다. 이들은 정의와 불의, 옮고 그름으로 세상을 볼 수 없다. 이해관계 그리고 내가 안녕할 수 있는 길에 도움이 되는지 그렇지 않은지 만을 살피고 습관처럼 그 편에 선다.
그리고 안녕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먹고 살기가 늘 힘겨운 싸움이 되고 불안한 미래에 고통 받으며 하루하루가 치열한 생존의 일상인 그들. 부당과 차별에 맞서기도 하고 우리사회를 변화시켜보겠다고 힘을 모아 투쟁도 하지만 변하지 않는 현실과 스스로의 무력함에 패배감이 가득하다.
우리는 어쩌면 이러한 안녕한 사람들의 힘과 권력에, 안녕한 척 하는 사람들의 외면에, 안녕할 수 없는 사람들의 패배주의 덕에 이명박과 같은 국가권력 사유화 전문 대통령을 모시고 독재자의 딸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내는 비정상적인 나라를 만들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모르는 척 안녕한 척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