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의 유적? 동판 하나만 덩그러니만해 한용운 선생이 머물렀던 만해당 앞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양태훈
종로구 계동에서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는 이유리(46)씨는 "서울시가 과연 문화재와 사적에 관심이 있기나 한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씨에 따르면, 만해 한용운 선생이 기거하며 3·1운동을 도모했던 곳은 이씨가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가 있는 자리(종로구 계동 43번지)인데, 전혀 엉뚱한 곳에 표지석이 세워졌다는 것이다.
표지석이 세워졌던 자리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100m 정도 떨어진 '석정보름우물(종로구 계동 58번지 뒷길)' 바로 옆이었다. 관광객들이 보면 이 우물이 만해 선생이 기거했던 집터로 오인할 만했다. 하지만 시민들의 제보가 계속되자, 서울시는 지난 2012년 원래의 자리(계동 43번지)로 표지를 옮겼다. 그러나 골목이 좁아 표지석을 세우는 대신 게스트 하우스 대문 옆에 동판을 붙여놨다. 유적에 대한 관리를 담당하는 관련기관의 고증이나 연구가 부족했음을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만해 선생의 표지석이 잘못 세워져 있던 근방에서 55년째 살고 있는 이춘식(72)씨는 "표지석이 있었던 것 같긴 한데 언제 없어졌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그런 게 있었냐, 누가 관리하는지도 모르겠다"며 의문을 가졌다. 송영혜 서울시 문화재연구팀 주무관은 "현재 표석 디자인 개선사업을 하면서 설치 주체를 알 수 있도록 기관명과 설치 일자를 표시할 것"이라 밝혔다.
지난 7월 '효창공원국립묘지' 추진 법안을 발의한 민주당 김광진 의원실 고상만 보좌관은 "일본의 야스쿠니 비판 이전에 우리 항일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예우가 우선"이라며 "말로만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위하지 말고, 실제 독립운동하신 분들을 국가가 관리하는 것이 그 첫 번째"라고 말했다.
문화재발굴현장에서 연구작업을 해온 전영호 연구원 역시 "표지석 하나로는 안 된다, 학생과 시민들이 항일독립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스토리로 이해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생가터나 기념관 같은 역사문화 현장에 대한 문턱부터 대폭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