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우상과 이성>. 이 책은 발간되자 마자 판매금지 되었고, 저자 리영희 교수는 구속되었다. <민족경제론>. 박현채 선생의 이 책도 발간되자마자 판매금지 되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 이 책은 10.26 직전에 발간되었으나 발간 즉시 판매금지 되었다. <제3세계와 종속이론>. 10.26 이후 계엄령 하에서 검열을 받고 정식 출간되었지만 전두환 제체 출범 후 판매금지 되었다.
김학민
독재정권의 출판 탄압우리나라 헌법에는 출판의 자유가 명시되어 있다. 헌법 제21조 ①항은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하고 있고, ②항에서는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며 그 '자유'를 확실하게 명토 박는다. 심지어 국민의 기본권을 철저히 유린한 유신헌법도 제18조에 "모든 국민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제한받지 아니한다"며 출판의 자유를 명시하였다.
그러나 국가에 대한 국민의 의무만 강요되고 권리와 자유는 철저히 유린되었던 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 시절, 출판의 자유만 따로 누릴 수 있었겠는가. 독재정권은 우선 출판사 설립을 '허가'해 주지 않았다. 출판사는 '허가'제가 아니라 정해진 서류와 조건을 갖춰 시청이나 구청에 '등록'하면 되는 것인데, 아예 등록 신청서류를 내주지 않는다. 다만 엄격한 신원조회를 거쳐 출판사와 대표자의 명의변경은 가능했기 때문에, 휴면 출판사를 돈을 주고 인수할 수는 있었다. 70,80년대 인문사회과학 출판사들은 대개 그렇게 출발했다.
또 독재정권은 납본필증 발급을 악용했다. 납본은 학술도서의 경우 초판 발간 시 4권을 문공부 출판과에 제출하는 것으로, 납본필증은 그 제출을 확인해 주는 영수증 같은 것이다.(납본은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받고, 필증은 문공부에서 발급하여 출판사로 우송한다) 그런데 특정 도서에 대해 문공부는 영수증에 불과한 이 필층을 발급하지 않고, 전혀 법적 근거도 없이 납본필증이 발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서점에서 판매할 수 없다고 강제한다.
이렇게 납본필증이 나오지 않아 소위 '판금(판매금지)도서'가 되면, 문공부는 양식에도 없는 보관증 한 장만 달랑 던져놓고는 출판사 서고에 쌓인 책들을 실어가고, 이미 서점에 나간 책들은 경찰을 시켜 압수해 가고, 소지하고 있다가 발각되면 <변호인>의 박진우처럼 용공혐의자로 낙인찍는다. 1972년 박정희 유신시대부터 1987년 전두환 독재정권까지 이렇게 판매가 금지된 도서는 355종으로 추산되고 있다.
저자와 발행인에 대한 협박과 구속도 허다했다. 박정희 유신시대에는 문공부 출판과에서 출판사 대표를 호출해 협박했다. 또 고 리영희 교수처럼 검찰이 책을 쓴 저자를 직접 구속하였다. 전두환 시절에는 경찰이나 검찰이 출판사를 압수수색하고, 출판사 대표를 구속하여 징역을 살리는 것으로 탄압했다. 구랍 12월에 타계한 풀빛출판사의 나병식 대표처럼, 80년대에 사회과학 전문 출판사를 운영했던 출판인들은 웬만하면 한번쯤은 경찰서 유치장이나 교도소 구경을 해야 했다.
계엄령 하의 출판 검열<우상과 이성>은 1977년 내가 편집장으로 한길사에 합류하기 직전에 김언호 사장이 직접 편집, 교열하여 낸 책인데, 책이 나오자마자 바로 판매금지 되고 저자가 구속되었다. <민족경제론>은 1978년에 초판이 나왔는데, 이 책도 바로 판매금지 되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 은 1979년 10.26사건 한 달여 전에 발간된 후 바로 판매금지를 당했다. <제3세계와 종속이론>은 1980년 4월 계엄 하에서 합법적으로 발간되었지만, 나중에 판매금지 되었다. 나는 이 책을 내고 한 달 후에 감옥에 갔다.
1979년 10월 26일, 독재자 박정희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에 맞아 숨지자,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 정부는 곧바로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러나 최규하는 허수아비에 불과했고, 전두환 보안사령관 등 신군부가 막후에서 권력을 휘둘렀다. 신군부는 모든 언론, 출판을 검열한다는 포고령을 내리고 서울시청 지하에 그 사무실을 열었다. 신문들은 매일 편집된 대장을 들고 와 군인들로부터 '검열필' 도장을 받은 후에야 인쇄할 수 있었다.
신문 등은 신군부 군인들이 주로 검열했지만, 출판 쪽의 검열은 서울시공무원들을 차출하여 하게 했다. 신문의 짤막한 기사는 삭제, 수정 등 판단 내리기가 쉽지만, 출판은 학술적인 부분이 많고, 또 글도 길어 군인들이 맡기에는 골치가 아프기도 했을 것이다. 더구나 신군부에 가담한 자들은 당시 자기 직속상관에게까지 총질을 해대며 권력 쟁탈에 혈안이 되어 있었으니, 한가롭게 가제본 책을 읽고 있을 틈도 없었을 것이다.
'서울시공무원' 검열관들은 마지막 교정쇄를 가제본 하여 가지고 가면 며칠에 걸려 읽고 권력이 싫어 할 용어나 문구 등을 삭제 또는 수정하도록 요구한다. 그리하여 출판사에서 수정본을 다시 가지고 가면, 웬만하면 검열 책임자의 결재를 받아 '검열필' 도장을 찍어 준다. 이 절차가 끝나야 비로소 인쇄, 제작에 들어가는 것이다. <제3세계와 종속이론>도 계엄령 하에서 이런 과정을 거쳐 신간으로 출간될 수 있었다.
한 의인(義人)이 있었다 책 한 권 발간하려고 이렇듯 여러 번 검열 사무실을 들락날락 하다 보니, '서울시공무원' 검열관과도 꽤 안면을 트게 되었다. 김아무개라는 공무원이 있었다. 그는 그중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었고, 신군부의 행태에도 비판적인 눈치였다. 어느 날 그에게, "우리 출판사에 문공부에서 납본필증을 내주지 않아 서점에 배포하지 못하는 책들이 있는데, 검열에 넣을 테니 수정할 곳이 있으면 수정해서 발간할 수 있겠는가?" 넌지시 물으니 선뜻 가져와 보라 했다.
박정희 유신독재 하에서 판금서적으로 낙인 찍혀 빛을 보지 못했던 <우상과 이성>, <민족경제론>,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전두환 신군부의 계엄령 하에서 '합법적'으로 출간되었다. 세 권의 책이 다시 인쇄되어 서점에 배포되자, 짜르 체제를 비판한 A. N. 라지시체프의 여행기 <길>에 대한 러시아 한 시인의 평처럼 "그 책들은 굶주린 자들이 먹이에 달려들듯이 팔려나갔고, 그 속에 씌어 있는 언어들에 전율하였다."
깨어 있는 눈으로 80년대를 산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이 세 권의 책들이 험악하고 고단했던 그 시절을 버티어 나가는데 얼마나 큰 위안과 희망, 힘이 되었던가를…. 영화 <변호인>의 중심에 단호하게 권력의 불의에 맞선 한 '변호인'이 있었듯이, 이 세 권의 '불온서적'에도 신군부 몰지성의 야만에 반발한 한 의인(義人)이 있었다. 모든 것이 유신시대로 회귀해 가고 있는 오늘, 34년 전 그 의인을 다시 생각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21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