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탑이 집 앞에...밀양시 부북면 평밭마을에 살고 있는 박인식(67)씨의 집 뒤편에는 130~131번 송저탑이 건설될 예정이다. 박씨는 송전탑과 거리가 불과 "170미터"라고 말했다.
정대희
경남 밀양시 부북면 평밭마을은 산 중턱에 위치한 두메산골이다. 마을로 향하는 구불구불한 비탈길을 따라 오르면 밀양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일 정도다. 첩첩산중에 있는 작은 시골동네, 하늘이 가깝다.
8일, 이 마을에서 박인식(67)씨를 만났다. 한국전력의 송전탑 건설 공사가 재개된 지 100일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그는 송전탑 2기(130, 131번) 건설 예정지 인근에 거주하고 있다. 그의 집은 송전탑 예정지와 직선거리로 불과 170m 떨어져 있다. 한전에게 "이주 대상자"란 말을 전해들은 이유이기도 하다.
"헬기 때문에 죽것다카이"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그는 요즘 헬기 때문에 고민이다. 한전이 송전탑 공사를 재개한 지난해 10월부터 그의 집 위로 하루에도 여러 차례 공사 자재를 실은 헬기가 이동하기 때문이다.
"
사람이 살 수가 있어야제. 허구한 날 '다다다' 거리며, 수시로 날아댕기는데 아주 미치켔다카이. 밤에 누버서(누워서) 잘라카면 귀가 멍멍하다 안 카나. 잠도 못자 삐고 밥맛도 없어. 스트레스가 쌓여서 사람 죽것다카이. 저 놈의 것(헬기)만 보면 세가빠지게(아주 많이)열불이 난다 안 그나. 저걸 확 공가삐야(부서버려야)는데."송전탑 건설 공사 인근 주민들의 정신건강에 빨간 불이 켜졌다. 박씨처럼 헬기 때문에 고통을 겪는 주민들이 상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3~5일까지 3일간 인도주의실천의사협회(아래 인의협)가 송전탑 경과지 4개면(부북, 산외, 단장, 상동) 주민 31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77%가 헬기로 인한 소음, 공포, 불안 등을 심하게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혀 경험하지 않았다'고 응답한 이들은 1%에 불과했다.
박씨는 "옆 사람과 대화할라케도 저 놈의 소리 땜(때문)에 몬(못)한다카이. 억수로 시끄러버서 티비 볼륨도 아래께(예전에)는 삼(3)으로 했는데, 요샌 십일(11)로 올려도 몬(못) 듣는다. 접때는 헬기서 각목이 집 앞으로 떨어졌다 안 그나. 1~2초만 늦었어도 집이 뿌사져(부서져) 부렀을끼다. 고마 불안해 살 수 있게나. 이기가(여기가) 전쟁터가"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29일 밀양 송전탑 공사 장비를 싣고 가던 헬기에서 각목이 떨어져 주민들이 한전 밀양지사를 찾아 항의하는 일이 발생했다. 길이 약 2m의 각목은 다행히 숲에 떨어져 주민 피해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평밭마을 주민은 불안해 했다.
이아무개(70)씨는 "운이 좋아 그게(각목이) 숲에 떨어졌지. 안 그랬으면 고마 대형사고 나삐제(났다). 한 번 그러니께 불안해서 자꾸 하늘만 올려본다 안 카나. 요기서 불과 끽해야(재봐야) 50m 위에서 헬기가 날아다닌다. 맨날 '두두두...' 거리며 사람 스트레스 받게 하지. 혹시 또 자재 떨어져 삘라 불안하제. 저게(헬기) 억수로 사람 미쳐뿔게(미처버리게) 하는 기다(것이다)"라고 말했다.
인의협이 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을 대상으로 헬기 소음으로 인한 불안감을 조사한 결과, 헬기 소음을 '심하게 경험했다'고 응답한 사람이 '약간 경험했다'고 답한 이들보다 3.7배나 더 불안 증상을 보였다.
산기슭에 위치한 마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송전탑 건설 공사현장과 거리가 떨어져 있지만 헬기 소음 등으로 인한 정신·심리적 피해는 동일했다.
"손등 찢기고 머리 다치고"... 신체적 피해 잇따라여수마을 이수희(65)씨의 말이다.
"헬기 소리를 하루 웬쟁일(온종일) 듣다보면 약 묵고(먹고) 체한 것처럼 그렇다.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지 신경질도 나고 기운이 읍다(없고). 철탑 들어서면 전자파로 건강이 나빠지고 땅값도 떨어진다 안 카나. 송전탑만 생각하면 골치가 썩는다 썩어. 와 아무 문제 읍스면(없으면) 고마 즈그들이 와서 살제 이게 우야노(뭐하는) 짓이고. 저것들(송전탑, 헬기)만 보면 울화가 치민다 치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