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에서 장을 담고 있는 미생물 농사꾼, 우태영선생. 이 분은 우리의 장이 천연 항생제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안수
어제 오전, 거창에서 장을 담그시는 옹기뜸골의 우태영 선생님께서 오셨습니다. 거창에서 헤이리까지, 300km를 넘게 밤새워 달려오신 겁니다. 손에는 된장과 고추장, 그리고 청국장이 들려있었습니다.
서울과 경기도 일원에 요청받은 장들을 직접 전하기위한 발걸음이 드러난 목적이었지만 해가 바뀌었으니 보고 싶었던 사람 얼굴을 직접 대면하는 것이 더 큰 목적이었을 것입니다.
늦가을에서 초겨울에 걸쳐 두 번에 걸쳐 콩을 삶아 메주를 발효실에 들여 두었으니 이제 좋은 메주가 만들어지는 것은 하늘과 땅의 기운과 자연의 신묘한 조화에 맡겨둘 일입니다.
좋은 된장과 간장을 위한 좋은 메주를 만들기 위한 지금 사람이 할 일은 그저 조용히 기다려 주는 것, 즉 '뜸을 들이는 시간'을 허락하는 것입니다.
맛 좋은 밥이 되는 일이나, 좋은 장이 되는 일이나, 좋은 사람이 되는 일, 그 이치가 크게 다를까, 싶습니다. 밥을 지을 때면 더 이상 가열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고, 장을 만들 때도 사람의 품을 들이지도 않는 시간, 즉 그냥 내버려두는 시간이 꼭 필요한 것이지요. 뜸을 들이지 않은 밥은 설익고, 뜸을 들이지 않은 장은 소금물에 불과합니다.
사람에게도 이 '뜸을 들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시간 즉, 짧게는 막연히 먼 산을 보거나, 하늘을 올려다보는 시간, 눈을 감는 시간, 길게는 며칠간, 혹은 몇 주간 일상으로부터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허락되어야 합니다. 일을 하지 않는 시간으로 여긴 그 시간이 일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바로 '뜸이 드는 시간'인 것이지요. 마침내 향기 나는 사람으로 완성되는 시간입니다.
저는 미생물 농사꾼 우태영 선생님을 생각할 때마다 자연 좋은 장의 비결을 생각하게 되고, 좋은 장은 '뜸'을 들이는 그 시간도 허락하지 않은 조급함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다는 이치를 상기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