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파업 중단 선언하는 민주노총오른쪽 부터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 김명환 위원장, 이상무 공공운수노조연맹 위원장이 지난 달 30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철도노조파업 중단을 선언하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희훈
우리 모두가 알듯, 결과는 정반대였다. 노조가 쇠퇴한 시기에 일자리는 늘기는 커녕,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기업들은 걸핏하면 노조 때문에 한국에서 기업하기 어렵다고 했지만, 이들은 노조조직률이 가파르게 떨어진 기간에 도리어 대규모 해외이전을 감행했다. 삼성처럼 노조가 없던 회사도 사업부를 열심히 외국으로 옮겼다.
여기서 '노조의 쇠퇴에도 불구하고' 해외이전이 는 게 아니라, '노조의 쇠퇴 때문에' 해외이전이 가속화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게 중요하다. 독일의 경우, 노조가입률이 한국의 두배가 넘고, 노조대표가 경영에 직접 참여하기 때문에 기업주가 일방적으로 해외이전을 결정할 수 없다. 그로 인해 독일은 다른 선진국과 달리 강력한 제조업 기반을 잃지 않고 있다. 독일의 총 수출액 가운데 제조업 비중은 70%를 넘어선다.
경영참여는커녕, '철도 민영화 반대'라는 공익적 요구조차 '불법'으로 몰려 공권력의 철퇴를 맞는 코레일 노조가 '귀족 노조'라면, 회사의 운영을 좌지우지하는 독일 노조는 '황제 노조'쯤 될까? 게다가 한국에서는 '한물 간' 산업으로 간주하는 제조업까지 틀어쥔 채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텅스텐 밥통'으로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궁금한 것은, 이런 독일이 왜 망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망하기는커녕, '고용의 기적'이라 불릴 정도로 실업률이 낮으며, 세계 경제위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더 잘 나가며 '부러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었다. 독일 기업은 경기가 나쁠 때 직원을 해고하는 대신 노동시간을 줄여 고용을 보장하고, 국가는 줄어든 임금을 보상해 준다. 기업이 직원을 멋대로 자르도록 만드는 것을 '개혁'과 '선진화'라고 부르는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한국에서는 기업, 언론, 정부, 시민이 합심해 '노조'와 '철밥통'을 때려 잡았다. 그 자리에 남겨진 것은 비정규직이었다. 비정규직은 '고용유연화'와 '효율성' 측면에서 가장 '선진화'된 고용 형태일 것이다. 손쉬운 해고가 보장된 데다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에 지나지 않으니 '철밥통'과는 거리가 멀고,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할 조직을 갖기 어려우니 '귀족노조' 논란에서도 자유롭다.
이제 꿈에 그리던 결과를 얻었으니 행복해야 할 텐데, 별로 그런 것 같지 않다. 청년들은 취업,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세대'로 전락했고, 노인들은 절반 가까이가 빈곤층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가계부채는 1000조 원을 넘어섰고, 자영업자의 절반은 한 달에 100만 원도 벌지 못한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
'철밥통'을 찬 진짜 '귀족' 보수언론은 '귀족 노동자'라는 희한한 말을 유행시켰는데, '귀족'은 일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는 권력층을 말한다. 귀족은 품을 팔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 즉 '노동자'의 반대 개념이다. 한국사회에 귀족이 있다면, 회사와 상대하기 위해 '노조'를 구성할 필요도, 처우 개선을 위해 '파업'을 할 필요도 없는 사람들이다. 예컨대 기업을 물려받는 재벌의 자손이나 수억에서 수십 억 연봉을 받는 기업의 등기이사들, 또는 억대 연봉을 받는 고위공무원들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지난해 1월, 서울방송(SBS)은 공무원의 보수와 수당을 인상하기로 한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되었다고 보도했다. 그 결과, 대통령 연봉이 3.3% 올라 2억 가까이 받게 됐고, 국무총리의 연봉은 1억 4928만 원, 장관급은 1억 977만 원, 차관급 연봉은 1억 661만 원으로 2012년에 비해 300만 원 이상이 올랐다.
언론은 노조가 임금 인상을 요구할 때마다 '경제난'과 '방만경영'을 비난했지만, 공무원 임금인상을 비판한 언론은 찾기 어려웠다. 최저의 경제 성장률에 사상 최대의 국가부채를 기록 한 상황에도 말이다. 이들 대다수가 상당한 재산가들이어서 월급 인상이 생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고위 공무원들의 연봉인상을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나라살림이 어려워도 재산가 고위 공무원들의 임금을 올릴 필요가 있다면, 경제가 나빠도 재산 없는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은 더욱 필요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노조나 파업 없이 '의결' 만으로 임금을 올릴 수 있는 '초합금 밥통 귀족'들이 한 푼 더 받기 위해 거리에 나서야 하는 노동자들을 '귀족'과 '철밥통'이라는 말로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 노조가 '강성'이라는 인식을 주게 된 것은 회사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된 탓이다. 이 경우 노조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시위와 파업뿐이기때문이다. 독일 노조가 자주 파업하지 않는 이유는 국가가 노동자의 권익을 보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경영 참여가 제도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철밥통'이 왜 나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