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입수한 <산음신문>의 '잡보'란을 배삼준 회장이 가리키고 있다.
정운현
- 하자라니요? "도장이 없습니다. 시마네현 지사의 직인(관인)이 찍혀 있지 않고 '회람'이라는 도장만 있는 문서입니다. 그런 문서는 나도 만들 수 있습니다. 내가 한국에서 독도 공부를 하면서 이 문서의 사진을 수십 번은 더 봤는데 관인이 찍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했고, 의심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 말고도 수많은 학자들을 비롯해 그 누구도 이 사실을 지적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 일본은 그간 '시마네현 고시 40호'를 통해 독도를 편입했다고 주장해 왔는데, 결정적인 문서에 하자가 있군요? "바로 그 점입니다. 그리고 귀국해서 조사해 보니 시마네현 고시 40호의 사본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 시마네현 방문은 그걸로 끝입니까? "아닙니다. 호텔에 와서 생각하니 아무래도 뭔가 찝찝했습니다. 그래서 같이 간 교수님을 모시고 택시를 타고 다시 시마네현 청사로 갔습니다. 마침 사무실이 한가했는데요. 1층에 여직원 한 명이 왔다 갔다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 여직원에게 청사가 언제 탔는지를 한자 필담으로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여직원이 '조또 마떼!'(잠시 기다리세요) 하더니 좀 있다가 유인물을 하나 건네주는데 거기에 '1945년 8월 24일 청사 전소(全燒)'라고 나와 있더군요. 이른바 '마쓰에 소요사건'으로 현(縣) 청사가 불에 탄 것입니다."
- 청사가 불탄 시점을 확인했군요. 그래서요? "그래서 같이 간 분에게 현립 도서관엘 가서 당시 신문을 찾아보자고 했어요. 가서 찾아봤더니 과연 1945년 8월 26일자 <시마네신문> 기사에 사실 그대로 그 날짜에 불이 났더군요. 또 시마네현 고시가 신문에 실린 게 있다고 그래서 <산음(山陰)신문>을 찾아봤더니 '잡보(雜報)'란에 조그마한 기사가 나와 있더군요. 그리고 <산음신문> 기사에 '다케시마로 정하고 일본 땅으로 하기로 했다'고는 돼 있으나 그 근거가 '시마네현 고시 40호'라는 문서이름도 나와 있지 않고 고시가 언제 제정됐는지 제정일자도 나와 있지 않습니다. 이 신문기사의 의미는 일본이 독도를 편입한 사실을 만인에게 알렸음을 증명한다는 것인데 기사에 그런 중요한 사실도 빠져 있지만 시마네현이라는 조그만 지방지이기 때문에 공포한 사실로 인정되지도 않습니다."
<산음신문> 기사로는 공포 사실 인정 안 돼 - <산음신문> 기사는 날짜가 언제인가요? "(1905년, 명치 38년) 2월 22일 고시를 제정했다고 하는 날짜의 이틀 뒤인 24일자 기사입니다."
- 일본은 시마네현 고시를 어떤 경위로 제정했다고 주장합니까? "1905년 1월 28일 일본 각의(閣議)에서 '독도 편입'을 결정하고 이를 내무대신에게 위임했습니다. 내무대신은 다시 시마네현 지사에게 이를 지시했는데(훈령 제87호), 결국 시마네현에서는 고시를 제정한 적이 없다는 얘기죠. 일본 외무성에서 제작한 '다케시마 이해를 위한 10 포인트'라는 홍보 팸플릿에 보면 다른 항목은 모두 반 페이지 분량인데 유독 '편입' 건만 두 페이지에 걸쳐 장황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 팸플릿에서는 '독도 편입' 근거로 어떤 문서를 제시하고 있나요? "'고시'가 없으니까 각의 결정문 사진을 대신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미 자백을 한 셈이나 마찬가집니다."
- '독도 편입'의 근거랄 수 있는 '시마네현 고시 40호'가 <관보(官報)>나 <공보(公報)> <현보(縣報)> 등에 실려 있습니까? "그 어디에도 실려 있지 않습니다. 외무성 홍보자료에도 <산음(山陰)신문> '잡보(雜報)'란에 실린 것만 거론하고 있습니다."
- <공보(公報)>나 <현보(縣報)>에 해당 고시가 실렸다면 유효한가요? "설사 실렸다고 해도 전국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무효입니다. 그나마 해당공문들이 1905년에 모두 소실됐습니다. 또 설사 <공보>나 <현보>에 실렸다고 해도 영토 편입에 대한 공포방법으로는 국제법적으로 유효하지 않다고 합니다."
- 원본이 없다고 해서 증거력이 없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 원본이 없다고 해서 조약이 무효인 것은 아니죠. 그러나 이 경우는 좀 다릅니다. 문제의 고시는 1905년 2월 22일 제정됐다는 데 일본인 항복한 1945년까지 우리는 식민지 상태여서 독도를 내놓으라고 할 형편이 되지 못했고, 제3국 역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 적도 없어 독도를 둘러싼 시비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1946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회담이 시작된 지 3년 뒤인 1949년 처음으로 이 고시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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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을 위해 1951년 일본과 연합국 48개국이 맺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당시 일본은 독도를 강탈한 땅이 아니라 고시 제정을 통해 국제법적으로 합법하게 편입했다고 주장했는데요, 당시 고시 사본을 제출한 적이 있나요? "제출한 적 없습니다."
- 일본은 이 조약 내용에 독도가 한국땅이라는 명문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계속 주장해왔는데요, 그렇다면 독도가 일본땅이라는 규정은 있나요?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댑니다. 미 국립문서기록관리국에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비준 과정에서 유일하게 작성된 지도가 발견된 적이 있는데요, 소위 '맥아더라인'이라는 이 지도에는 조약 당시 일본 영토에서 독도가 배제돼 있습니다. 이 지도는 1952년 4월 발효와 함께 무효가 됐지만 5년 간의 회담 동안 연합국이 독도를 우리 영토로 인정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지도이지요."
- '이승만 평화라인' 제정 당시에도 사본 제시를 안 했나요? "예, 그때도 그렇고 지금까지도 일본은 우리 당국에 대해 항의하면서도 정작 편입의 근거라고 주장하는 고시 사본은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 사본을 제출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단언할 수 있나요? "국제법 학자나 미 국무성 자료에 정통한 학자들도 그런 자료를 본 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작년 11월 11일자로 한국 외교부에 사본을 보관하고 있다면 공개해 달라고 요청했더니 11월 29일자로 '소장하고 있지 않다'는 회신이 왔습니다."
- 다른 곳에 가서도 이와 관련한 확인 작업을 한 적이 있나요? "예, 11월 28일엔 일본 국회도서관에도 가봤습니다. 과연 이 고시가 <관보>에 공포가 된 일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1905년분을 다 살펴봤는데 없었습니다. 영토를 선점하려면 반드시 공포를 해야 하거든요. 사전에 일본 관서대 구로다 교수에게 문의했더니 헛걸음 한다고 가지 말라고 하더군요. 구로다 교수 왈, '<관보>에 실렸으면 내 목을 걸겠다'고 하더군요. 구로다 교수 말로는 사전에 비밀로 하라고 위에서 지령이 내려갔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