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밤중에 짐 정리올해 일흔 셋 되신 어머니의 꼼수에 말려 한 밤중에 한 트럭 분량의 책들을 정리하게 됐습니다.
이철재
"내일 도배 들어온다. 짐 빼라."
2일, 올해 들어 첫 세미나 겸한 점심을 먹고 있는데 경기도 포천에 살고 있는 누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뭔 얘기인가 들어보니, 어머니가 집에 습기가 많이 찬다고 도배 다시 해야 한다고 하도 성화라서 내일 사람을 보내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오전에 집에서 나올 때까지 어머니는 제게 아무 말씀 없으셨습니다. 제가 빌붙어 살고 있는 어머니 집은 지난해 11월 말 대대적인 창문 보수 공사를 했습니다. 낡은 창 대신에 방한 기능을 갖춘 2중창으로 바꿔 달았던 것이죠.
그때부터 어머니는 춥지 않아서 좋지만, 바람이 들지 않아서 벽에 곰팡이가 핀다고 자주 말씀을 하셨습니다. 겨울에 도배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씀드렸지만, 지난달에는 도배 기술자를 불러서 견적을 뽑으셨더군요. 어머니는 한 번 하시겠다고 하면 앞뒤 안보고 밀어붙이는 성격이 있으시거든요.
도배 기술자분과 이런 저런 얘기하다 지금 당장 도배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판단을 했습니다. 창문 바꾼 지 얼마 안 돼서 도배를 새로 해도 다시 습기가 찰 수 있다는 것이었죠. 어찌 됐든 어머니의 강행에 제동이 걸린 셈입니다.
도배는 봄 되면 제가 하겠다고 했습니다. 필요하면 키 큰 작은형을 불러서 천장 도배까지 말끔하게 하겠다고 그때까지 참으시라고 다짐도 받아 뒀습니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 저를 빼고 누나에게 투덜거리셨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