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준 김광순 부부"이리 보아도 내 사랑, 저리 보아도 내 사랑"이란 노랫말과 어울리는 장면이다. 100세 된 할아버지는 93세된 할머니가 그렇게 좋으신가보다. 사진 찍을 때는 몰랐는데, 집에 와서 보니 할아버지 귀가 '부처님 귀"요, 할머니는 귀고리를 하셨다.
송상호
2014년 1월 1일이면, 우리나라 나이로 딱 100세가 되는 강재준 할아버지. 그리고 그 어르신과 15세 때 결혼해 올해로 93세가 되는 김광순 할머니. 그들을 지난 12월 31일에 경기도 평택 파란노인주간보호센터(시설장 이용순)에서 만났다.
"부부지간에 잘 살어. 그게 최고랑게""할아버지! 여기 센터에서 어느 할머니가 제일 좋아요?"
"그거야 말해서 뭣햐. 우리 할망구가 제일이쟈."
얼굴에 미소가 도는 강 할아버지. 그를 돌보는 이미심 선생(우리의 인터뷰를 통역(?)함)의 증언에 따르면 "아직도 할머니 옆에 다른 할아버지가 앉으면 째려보시고 막 그래요. 호호호"란다. 얼마나 할머니를 아끼시는지, 다른 할아버지는 얼씬도 못한단다. 할아버지가 한 말씀 하신다.
"내 살아 보니 부부보다 더 좋은 게 없어. 자네는 안 그런가?"
"아, 예 예.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죠."
할아버지의 예상치 못한 훅 한방에 내가 어질어질하다.
"울 할멈 시집 와서 고생 시킨 거만 생각나. 그 생각만 하믄 눈물 나재."
순식간에 할아버지 눈가가 촉촉하다. 80년 진심이 느껴진다. 그런 이야기를 할 때도, 할머니는 옆에서 새색시처럼 배시시 웃기만 하신다. 마치 오늘 처음 맞선보는 자리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살아오면서 제일 기뻤을 때를 물었다.
"자식들 낳아서 면사무소 등록할 때 쟈."
아기들이 돌을 넘기지 못하고 죽기가 십상이었던 시절, 미루던 출생신고를 하던 날을 말한다. 사실 두 자녀를 저 세상에 먼저 보내고, 8남매가 살아 있다. 이제 증손자까지 있다.
"이제 자손들이 하도 많아 얼마나 되는지 나도 몰러."
새해 덕담을 해달라는 나에게 강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부부지간에 잘 살어. 그게 최고랑게."단순한, 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덕담이자 충고다. 조금은 식상한 질문이 이 할아버지에게 던져지면 신선해진다.
"다시 태어나도 할머니랑 사실 거예요?"
"그라재. 당연하재. 자네는 안 그런가?"
헉, 또 할아버지가 치고 들어오신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남북통일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워디 있간디"1915년생인 할아버지. 그는 일제강점기를 보낸 산증인이다.
"그 시절은 말도 못해. 사람이 사람 사는 게 아니엇당게. 모든지 뺏겨 부러. 권리가 없어."
할아버지의 눈에 힘이 들어간다.
"6·25 때는 피난은 안 갔재. 영암(전라남도) 살았응게 말여."
"6·25때, 고생 많으셨겠다"는 말에 할아버지는 당장 도리질을 치신다.
"아녀. 고생 없었어. 인민군들이 울 마을에도 왔었는디, 서로 잘 지내 부렀재. 우린 그럈어. 서로 너도 살고 나도 살고. 인민군도 한 동족이라 서로 끌어안고 울고 불고 했쟈. 아 갸들도 억지로 인민군에 끌려 간 거 아녀."
할아버지는 그 때가 생각나셨는지 또 눈시울이 붉어진다.
"남북통일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워디 있간디. 서로 철조망치고 동족끼리 이게 무슨 짓이여. 서로 자기 잘났다고 하지 말고 서로 품으면 되쟈."
할아버지는 나지막히, 그러면서도 아주 비장하게 말씀하신다.
"지성이며 감천이랑게. 남북통일도 마찬가지여.
"'인명은 재천'잉게로 사람은 까불지 말어야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