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 격력하는 KTX 범대위31일 오후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철도노조 파업중단과 현장투쟁 전환에 따른 KTX 범대위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박석운 KTX 민영화 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 상임대표(왼쪽)와 권영국 변호사가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과 악수를 나누며 격려하고 있다.
이날 이들은 "철도 노동자의 파업투쟁에 성원해 주신 국민들에게 감사 드리며 철도 민영화 저지 투쟁은 계속 할 것이다"고 말했다.
유성호
"뭐 다른 수 있어? 철도노조 혼자 죽으라고? 그들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어? 할 만큼 했잖아? 대안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거야? 민주노총도 총파업을 계획하고 있고 국회소위도 있으니까 거기에 기대를 걸어보자고."
철도노조의 파업 철회를 옹호하고 그들의 헌신적 투쟁을 인정해주기 위한 반응이라는 것은 이해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이런 반응은 소위 '선수'가 아닌 '능동적 대중'들에게 대단히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 물론 박근혜 정권에게도.
참여율은 자신의 참여로 인해 무엇인가 바뀔 것이라고 인식하는 데에서 폭발적으로 상승한다. 그리고 그 실제적 가능성과 상관없이, 자신이라도 참여해서 무엇이라도 해보려던 이들은 파업 철회 과정을 지켜보며 자신의 무력함을 확인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단지 철도노조 파업만이 아니라, 이 잘못된 정권을 바꾸는 데 이제 자신이 더 이상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떠오를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여전히 철도노조를 지지하고 응원한다. 파업 철회의 불가피성도 인정한다. 지금 시점에서 소위 '선수'들이 다른 '선수'들 사이의 논쟁에서 철도노조에 힘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순수하게 참여하고 이 싸움을 헌신적으로 지지해온 능동적 대중이 느끼는 감정에도 관심을 보여야 한다.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이 느낄 수도 있는 허무함도 고려한 메시지가 나와야 한다.
결과가 뻔하지 않기 위하여진보운동과 제도정치는 선순환 관계여야 하지만, 지금은 이 연결고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운동의 무력감과 제도정치로의 쏠림은 대중 참여를 높이거나 지속시키기 어렵다. 국회 소위가 만들어졌지만 그것이 광장에 모인 이들을 대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무르익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다면 피켓을 만들고 거리에 나서야 할 동기는 더욱 사라진다는 딜레마에 빠진다. 2008년 촛불 이후에 그랬던 것처럼, 단지 선거 결과만을 목 빠져라 기다리는 것 외에 별다른 길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잘못된 메시지는 이것이다. 우리의 힘이 부족했다는 솔직한 성찰보다 당연한 귀결이라는 항변이 강조되는 주장, 퇴진 대상으로 규정한 이들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제도화된 공간에 희망을 걸자는 제안, 일정 수준 이상의 희생을 요구하지 말라는 저항의 한계선, 좋은 때를 기다리자는 근거 없는 대기론. 선수들 사이에서는 통용될 수 있는 주장인지 모르겠지만 28일이 시작이라 믿었던 이름 없는 이들에게는 무력감의 확인이다.
만일 예전 그 교문 앞에서, '왜 교육부로 안 가냐'는 여학생에게 "몰라서 묻는 거야? 그것은 그냥 명분이잖아. 우리 대표단이 따로 약속 잡아서 면담할 계획이야"라고 했다면, 그 여학생은 다시는 집회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지도부에 대한 배신감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의 참여가 이 싸움의 향방을 좌우할 정도로 의미 있는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12월 22일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상승한 대중적 분노와 국민적 저항과, 이를 사회혼란으로 규정한 정권 사이에 존재하던 불안한 균형추가 이미 저편으로 기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앞으로 예정된 여러 싸움에서 능동적 대중이 사라진 채 선수들만의 싸움이 된다면, 그 결과는 뻔하기 때문이다.
새해를 맞이하는 지금, 한국 노동운동은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를 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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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생활속 진보를 꿈꾸는 소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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